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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관한 책 쓴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제목 바꾸고 싶다"

입력
2023.11.04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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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처드 도킨스, 내 인생의 책들'

무신론의 대가인 리처드 도킨스(왼쪽)가 지난 2012년 영국 성공회의 최고 성직자인 로완 윌리엄스 대주교와 '신은 있는가'를 주제로 토론할 당시의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무신론의 대가인 리처드 도킨스(왼쪽)가 지난 2012년 영국 성공회의 최고 성직자인 로완 윌리엄스 대주교와 '신은 있는가'를 주제로 토론할 당시의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제가 그 책을 쓰고 있을 때 저는 농담 삼아 '내 베스트셀러'라고 불렀지만 정말 그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누가 한 말인지를 모르고 이 문장과 마주한다면 어떤 성공한 작가의 적당한 겸양 정도로 읽힐지도 모르겠다. 진화생물학자이자 과학 저술가인 리처드 도킨스(82)는 1976년 영문판 초판 발행 후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한 '이기적 유전자'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자, 급진적 진화생물학자, 전투적 무신론자. 도킨스를 수식하는 다양한 말이 있지만, 신간 '내 인생의 책들'을 소개할 때에는 특별히 '대중 소통을 소명으로 생각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라는 수식어에 무게를 두는 것이 좋겠다. 가장 잘 알려진 저서 '이기적 유전자' 역시 그의 독창적 저술이라기보다는 진화생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집대성하여 대중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교양서인 만큼, 이런 접근이 그렇게 뜬금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런 그가 이번엔 과학 서평가로 분했다. 그의 80세 생일을 기념하여 엮은 책은, 그가 인상 깊게 읽은 책에 대해 쓴 서문, 후기, 에세이, 서평, 대화 등 56편의 글로 이뤄져 있다. 그는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선 과학자이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는 유독 애서가이자 독자, 심지어는 문학인의 면모가 도드라진다.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책은 항상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책과 존재에 대한 깊은 철학적 질문을 통해 과학에 입문할 수 있었다."

책은 진화론·자연선택·과학철학·종교 등 도킨스가 천착해온 주제에 따라 6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 장의 서두는 잘 알려진 석학과의 대화로 시작한다.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 캐나다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론 물리학자이지만 2018년 성추문으로 추락한 로렌스 크라우스와의 대담도 실려있는데, 대화는 2007년에 이루어진 것이다. 대담을 통해 각 주제에 대한 도킨스의 생각을 파악하면서 그간의 서평을 따라 읽다 보면 세계적 지성의 사유 체계와 독서 로드맵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리처드 도킨스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 저술가로 평가받는다. 1976년 첫 책 '이기적 유전자'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만들어진 신'으로 과학계와 종교계에 뜨거운 논쟁을 몰고 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리처드 도킨스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 저술가로 평가받는다. 1976년 첫 책 '이기적 유전자'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만들어진 신'으로 과학계와 종교계에 뜨거운 논쟁을 몰고 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메가히트를 친 첫 책 '이기적 유전자'에 대해 후회하거나 바꾸고 싶은 부분은 없을까. 그는 30주년 기념판을 위한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 가지 예외를 빼면, 이 책에는 내가 당장 취소하거나 사과할 대목이 거의 없다." 대단한 자부심으로 읽히지만 '한 가지 예외'라는 것이 널리 알려진 제목 '이기적 유전자'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그는 '이기적'이라는 표현이 야기하는 오해에 대해 언급하며 "제목을 '불멸의 유전자'로 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불멸은 '기운 나는' 단어였다. 유전정보의 불멸성이 그 책의 핵심 주제였고, '불멸의 유전자'라는 말은 '이기적 유전자'만큼이나 흥미를 당겼다."

출판업자인 애덤 하트-데이비스와의 대화에서는 과학 커뮤니케이터적 면모가 톡톡히 드러난다. 도킨스는 과학자들이 과학을 대중적 언어와 지식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과학을 위해서도 좋다고 믿는다. 전문가의 권위를 얻게 되는 순간 작은 연구실에 갇혀 학계의 고담준론만 반복하는 폐쇄적 지식인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주는 지점이다.

"저는 제 과학 동료들에게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쓰지 말고 일반인도 알아들을 수 있게 글을 쓰라고 설득하는 것이 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할 때 과학자들이 더 좋은 과학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할 때 다른 과학자들과 더 잘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자신이 하고 있는 과학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68쪽)"

특유의 재치 있고, 신랄하기까지 한 필치가 그의 솔직한 성격을 잘 보여준다. 1992년 8월 '뉴스테이츠먼'에 실린 리처드 밀턴의 '생명에 관한 사실들'에 대해 쓰면서는 "이 서평은 밀턴의 책이 받기에는 너무 세련된 비판이다. 이 책의 출판이 제기하는 단 하나의 진지한 의문은 '왜 이런 책을'이라는 것"이라며, 독자들에게 차라리 책을 구매하기보다 여호와의증인이 발행한 소책자를 읽기를 권하는 지점에서는 너무나 대담하여 식은땀이 날 정도다.

'코스모스'를 쓴 칼 세이건에 대한 찬사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세이건의 저작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을 무척 아름다운 책이라 평가하며 '문학으로서의 과학'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과학 논문은 왜 흥미롭고 재미있으면 안 되는가?' '왜 세이건은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했을까?' 어쩌면 우리 역시 '과학적' 글쓰기는 '비문학적'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건 아닐까.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을 내가 썼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친구들에게 이 책을 권하는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불세출의 저작을 남기고서도 세이건의 책을 탐내다니. 이리도 '이기적'일 수가.

리처드 도킨스, 내 인생의 책들·리처드 도킨스 지음·김명주 옮김·김영사 발행·640쪽·2만8,800원

리처드 도킨스, 내 인생의 책들·리처드 도킨스 지음·김명주 옮김·김영사 발행·640쪽·2만8,800원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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