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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부터 85년 동안 개인의 인생을 추적했다... '행복의 조건'을 알아내기 위해

입력
2023.10.28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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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세상에서 가장 긴 행복 탐구 보고서'

'하버드 성인 발달 연구'는 85년 동안 사람들에게 수천 개의 질문을 던지고 수백 가지를 측정해서 그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유지하도록 해 주는 게 뭔지 알아냈다. 지속적으로 광범위한 중요성을 증명한 단 한 가지 요소는 바로 '좋은 관계'였다. 게티이미지뱅크

'하버드 성인 발달 연구'는 85년 동안 사람들에게 수천 개의 질문을 던지고 수백 가지를 측정해서 그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유지하도록 해 주는 게 뭔지 알아냈다. 지속적으로 광범위한 중요성을 증명한 단 한 가지 요소는 바로 '좋은 관계'였다. 게티이미지뱅크

2021년, 미국의 한 설문조사 결과로 한국 사회가 떠들썩한 적이 있었다. 퓨 리서치 센터가 17개국 선진국 국민을 대상으로 '삶에서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조사했는데, 가족을 꼽은 대다수 나라들과 달리 오직 한국만이 '물질적 풍요'를 1순위로 꼽은 것이 알려지면서다. "한국인은 돈밖에 모른다"는 자조와 냉소가 곳곳에서 넘쳤다. 이후 구체적 데이터를 들여다봤더니 '한국인만 탐욕적으로 물질을 숭배한다'는 단순한 결과를 도출하기는 어렵다는 해설이 힘을 얻으며 논란은 일단 사그라들었다.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유독 경쟁이 치열하고 부와 지위로 타인을 곧잘 판단하는 한국 사회에 이 같은 질문은 조금 더 진지하게 논의될 필요가 있다. 무엇이 행복인가? 행복하려면 어떤 조건이 가장 중요한가? 정말로 '물질적 풍요'가 갖춰지면 인간은 행복할 수 있는 걸까?

'행복'은 인류가 내내 추구해 온 목표다. 2,000년도 훨씬 전인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행복'을 모든 인간 행위의 궁극적 목적으로 봤다. 그는 인간의 가장 잘 된 상태, 가장 행복한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로 '에우다이모니아'라는 말을 썼다. 이런 행복은 삶의 의미와 목적이 있다고 느끼는 깊은 행복으로, 순간의 즐거움과 덧없는 쾌락에 가까운 행복인 '헤도니아'와는 구별된다.

여기, 장장 85년이라는 시간 동안 인간의 행복을 추적해 온 프로젝트가 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 '성인 발달 연구'는 역사상 가장 길게, 그리고 과학적으로 인간의 행복을 조사해 왔다. 책 '세상에서 가장 긴 행복 탐구 보고서'를 쓴 저자 로버트 월딩거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는 이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네 번째 총책임자다. 공동저자인 마크 슐츠는 부책임자다.

저자 중 한 명인 로버트 월딩거의 TED 영상 '무엇이 좋은 삶을 만드는가'는 현재까지 4,500만 명이 시청했으며 역대 TED 강연 중 조회수 10위 안에 들어있다. TED 캡처

저자 중 한 명인 로버트 월딩거의 TED 영상 '무엇이 좋은 삶을 만드는가'는 현재까지 4,500만 명이 시청했으며 역대 TED 강연 중 조회수 10위 안에 들어있다. TED 캡처

1938년 하버드 의대 성인 발달 연구소는 하버드 대학생 그룹 268명과 보스턴 최빈곤층 소년 456명을 분류해 그들의 삶을 지금까지 추적 조사하고 있다. 그간 84%의 참가자들이 연구에 지속적으로 참여했고, 이들의 후손 1,305명까지 더해 3세대에 걸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연구진은 단순히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피험자를 살피지 않는다. 이들의 뇌 스캔부터 혈액 검사, 그리고 심각한 고민을 털어놓은 비디오테이프 등 온갖 정보를 동원하여 이들이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측정했다. 85년 동안 한 사람의 생애에 걸친 '행복 종단 연구'를 통해 연구진이 도출한 결론은 단 한 줄로 요약된다. "좋은 관계는 우리를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 준다."

정말 이게 끝이다. 현대인들은 직업적 성취나 막대한 부, 사람들로부터 얻는 인기 같은 것이 행복의 조건이라 생각하지만, 이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는 행복의 조건은 '친밀한 인간관계의 빈도와 질'에 있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연구에 대한 설명을 거쳐 책은 후반부에 가족, 애착관계, 일터의 동료, 우정 등 주변의 다양한 관계에 적용할 수 있는 관계 활성화 방법을 설명하는데, 당장이라도 써먹을 수 있는 자기계발서 성격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추천사를 쓴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행복에 관해 읽어야 할 단 한 권의 책'이라 극찬했다.

참가자들 가운데 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사람에 속하는 존 마스덴은 가장 행복하지 않은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하버드 출신으로 변호사라는 꿈을 이뤘으나 타인과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두 번의 결혼을 했지만 진정 사랑받았다고 느낀 적이 없다. 아이들과도 멀어졌다. 반면 연구 참가자 중 가장 행복한 사람 중 한 명으로 간주되는 교사 레오 드마르코의 보고서에는 가족, 학교, 친구가 자주 등장한다. 뉴스에 등장하거나 사회에 이름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네 딸과 아내, 주변인들은 모두 그를 사랑했고 그 역시 보고서에 항상 '행복하다'는 응답을 남겼다.

단순히 책이 '행복은 좋은 관계에 달려있다'는 식의 공자님 말씀만 늘어놓았다면 다소 반발심을 일으켰을 것이다. 좋은 관계를 맺고 싶으나 폭력적인 부모와 단절된 상태라면 혹은 친밀함을 나눌 좋은 사람을 아직 찾지 못한 사람은 '행복'할 자격도 없는 거냐는 항의에 부딪히면서 말이다.

하나, 이 책의 장점은 '행복'이란 결국 자신에 달려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에 있다. 책에 인용된 한 연구에 따르면 '행복 설정점'이라는 개념이 있다. 우리 행동과 우리가 하는 선택이 행복의 약 40퍼센트를 차지한다는 이론으로, 행복은 우리가 충분히 가꾸거나 통제할 수 있음을 방증한다. 게다가 얼마든지 약한 유대관계에서도 좋은 관계의 실마리를 찾도록 돕는다.

우리는 이따금 '행복한 삶을 살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고민한다. 그러나 수백 명 이상을 대상으로 85년간의 연구를 집대성한 저자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말한다.

"좋은 인생은 직업적으로 성공한 뒤, 먼 미래에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엄청난 돈을 번 다음에 시작되도록 설정되어 있지도 않다. 좋은 인생은 바로 눈앞에 있고 때로는 팔만 뻗으면 닿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부터 시작된다. (61쪽)"

세상에서 가장 긴 행복 탐구 보고서·로버트 월딩거, 마크 슐츠 지음·박선령 옮김·비즈니스북스 발행·508쪽·1만9,500원

세상에서 가장 긴 행복 탐구 보고서·로버트 월딩거, 마크 슐츠 지음·박선령 옮김·비즈니스북스 발행·508쪽·1만9,500원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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