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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생 김지영'이 부엌에 재봉틀을 파묻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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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만 셋을 둔 그의 아버지는 친가 쪽 남자 조카를 양자로 들여 대를 이었다. 나고 자란 집에서도 '주인'이 될 수 없었던 딸은 결혼 후엔 이름도 잃었다. '알방석댁'. 경북 영주 '방석' 마을에서 시집와 누에 치고 목화 따서 가난한 시댁을 일으킨 '알짜'라며 동네 사람들이 이름 대신 그를 부른 호칭이었다. 고된 하루를 마치면 그는 방에 들어가 시집살이의 한이 담긴 '화전가'를 꺼내 읽고 눈물을 훔쳤다. 조선시대부터 흘러 내려온 '가사'를 읽는 게 시골 아낙의 유일한 낙이었다.
책은 20세기판 '82년생 김지영'이다. 1917년 태어난 한 시골 여인의 삶의 기록엔 뿌리 깊은 우리의 가부장적 질서와 격동의 현대사가 돋을새김된다.
저자는 1977년 세상을 떠난 그의 어머니(박명서)가 생전에 이곳저곳에 남긴 글을 토대로 자서전을 꾸렸다. 누군가의 삶의 연대기를 읽는다는 것은 우리를 거울에 비춰보는 일. 필부의 기록엔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도 절절하게 담겼다. 박씨는 결혼하고 얼마 안 돼 시댁의 부엌 땅을 파 손재봉틀과 놋그릇을 묻었다. 일제강점기 일본 순사들이 쇠붙이란 쇠붙이를 모두 뺏어가던 때였다.
해방 후 퍼진 호열자(콜레라)로 첫아들을 잃은 박씨는 아이들이 한국전쟁이 끝난 뒤 학교에서 타온 탈지분유를 처음 먹고 온 식구가 설사했던 날을 잊지 못한다. 1934년 7월 21일 영호남 지역에 폭우가 쏟아져 경부·호남선 등 철도가 줄줄이 끊긴 '갑술년 물난리'는 그녀가 살면서 겪은 가장 무서운 사건 중 하나였다. 집중호우로 순식간에 불어난 황토 물살이 집을 쓸어가자 박씨는 마을 공터에 움막을 지었다. 그 뒤 새 집터를 높게 쌓기 위해 강변에서 퍼온 흙을 며칠 밤을 새워가며 밟고 또 밟았다. 평범한 시골 어머니의 시각으로 기록된 생활사는 그 어떤 역사책보다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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