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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새끼' 사랑할 뿐인데.. 혹시 내가 학교와 교사 망가뜨리는 '괴물 부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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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애는 왕의 유전자(DNA)를 가진 아이이기 때문에 왕자에게 말하듯 듣기 좋게 돌려 말해주세요."
지난여름 공개된 편지 한 통의 내용에 대중은 경악했다. 세종시 소재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의 담임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고 교육청을 압박해 직위해제까지 시킨 학부모가 교사에 보낸 편지였다. '진상 부모'의 갑질 민원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학부모의 갑질 민원을 못 이겨 서울 서초구의 한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극히 이례적인 일일까. 교사들이 거리에 나서 목소리를 내면서 교육 현장의 처참한 사례들이 낱낱이 알려졌다. 다음은 현직 교사들이 직접 수집한 학부모 민원 사례 중 일부다. "우리 애는 매운 거 못 먹으니 고춧가루 안 넣은 국을 따로 주세요" , "급식 반찬을 잘게 잘라 주세요", "아이 마음 다치니 틀린 것에 빗금 치지 마세요", "선생님, 엄마들끼리 교원 평가 최하점 주기로 했어요."
'괴물 부모'. 자녀를 과잉 보호하며 벌이는 이상 행동으로 교육 현장을 파괴하는 부모들을 일컫는 말이다. 신조어가 아니다. 이미 10여 년 전 우리와 유사한 현상을 겪었던 일본과 홍콩에서 대두된 현상으로 '교사 공격대'라고도 불렸다. 2006년 6월 일본 도쿄 신주쿠의 한 초등학교에서 23세 신입 교사가 학부모에 시달리다 자살한 사건을 계기로, 일본은 괴물 부모를 심각한 사회 현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방송국에서는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에 대항해 교사와 변호사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드라마를 방영하고, 교육청에서는 이런 유형의 부모에 대처하는 매뉴얼을 만들어 교사들에게 보급하고 연수를 하기도 했다.
사회적 트라우마 전문가인 김현수(57)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신간 '괴물 부모의 탄생'에서 오늘날 우리 교육이 처한 문제의 핵심을 '괴물 부모'라고 봤다. 저자는 우리나라 괴물 부모의 출현 배경과 심리·인지 구조, 파괴적 영향력 등을 명쾌하게 분석한다. 그리고 사회적 해결을 모색하며 여러 제언을 한다.
책에 따르면 괴물 부모는 결국 스스로가 건강하지 않은 자아를 갖고 있기에 탄생한다. 현실에서 내 아이는 평범한 아이 중 하나이지만, 이를 수용하지 못하는 순간 괴물 부모는 교사 탓, 학교 탓, 친구 탓을 하게 된다. 아이의 가능성이 꺾였다는 누명을 희생양에 덮어씌워야 자기 자신과 자녀의 실패를 변명할 수 있고 스스로를 연민으로 무장한다. 이런 부모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녀에 대한 책임을 자기 자신이 지는 것이다. 자신이 완벽하지 않은 부모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자기애적 병리 증상이 괴물 부모 현상에 똬리를 틀고 있다.
괴물을 만들어 내는 사회 풍토가 괴물 부모를 만들어낸다. 학력이 자본이 되는 경쟁 중심 능력주의 사회는 개인을 성공에 집착하게 만든다. 높은 주거비와 교육비로 저출생이 심화하면서 '아이'가 귀해졌다. 가부장제하에 주로 여성이 독박 육아를 하면서 '자기 자신'을 잃은 엄마들은 자식과 스스로를 동일시한다. 자식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학부모와 교사 간에 학력 역전 현상이 일어나면서, 학부모들은 점점 학교와 교사를 '교육 서비스' 이용하듯 하게 됐다. 이에 더해 각자도생 풍조가 만연하고, 남들의 시선을 과하게 신경 쓰며 뒤처지거나 탈락하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평범한 부모는 점차 '괴물 부모'가 된다.
서울의 한 대안학교 교장이기도 한 저자는 수년 전부터 청소년 상담을 해왔고, 다양한 교사 모임에도 참석해왔다. 최근 일련의 사건으로 괴물 부모 현상에 시선이 쏠리지만, 현장에서 이상함을 감지하기 시작한 건 훨씬 전의 일이었다. 김 전문의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담임 교체 같은 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시작한 건 4, 5년 전의 일로 그간 누적돼 온 징조가 이번에 폭발한 것"이라며 "과거에는 관리자나 아이들 때문에 힘들다는 교사들이 많았지만, 갑자기 학부모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는 교사가 급격하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책은 그 시기부터 정리했던 것에 더해 서이초 사건 등 최근 한국 상황을 종합적으로 묶어 썼다.
해결책은 없을까. 김 전문의는 답을 공동체에서 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찍이 괴물 부모 문제를 겪은 일본은 '건강한 학부모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법과 제도 이전에 괴물 부모를 잘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힘이 다른 건강한 학부모에 있다고 본 거죠. 또 언론에서 괴물 부모 현상을 사회적으로 널리 알린 것이 사회적 규범을 다시 세우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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