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 쏠릴라"... 미국 '우크라 지원' 회의론에 겁먹은 유럽

입력
2023.10.06 20:00
수정
2023.10.06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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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장기화로 우크라 지원 부담 가중
유럽 "우크라이나, 미국 없으면 안 돼"
러, 우크라 민간 지역 공격... 52명 사망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앞줄 가운데)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5일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열린 제3회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에 참석한 유럽연합(EU) 및 참가국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그라나다=AFP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앞줄 가운데)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5일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열린 제3회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에 참석한 유럽연합(EU) 및 참가국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그라나다=AFP 연합뉴스

미국 의회가 최근 통과시킨 임시예산안에서 우크라이나 지원 관련 비용이 통째로 누락되자, 유럽이 겁을 먹고 있다. 지난해 2월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미국 내 회의론 확산을 뚜렷하게 보여 준 셈인데, 비슷한 피로감을 느끼는 유럽에 '자칫하다간 미국의 부담까지 떠안을지도 모르겠다'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을 선언할 수도 없는 유럽은 '미국 없이는 우크라이나 승리도 없다'며 호소에 나섰다.

'반푸틴' 정치클럽서 모인 유럽 "미국, 발 빼면 안 돼"

5일(현지시간)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열린 제3회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에선 이 같은 불안감이 노출됐다. EPC는 지난해 10월 '반(反)러시아'를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신생 연합이다. 유럽연합(EU) 27개국을 포함, 우크라이나 지지를 표명한 47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회원국인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도 이날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 독일 도이체벨레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EPC 참가자들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끊거나 줄일 수 있다는 데 한목소리로 우려를 표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미국의 공백을 유럽이 대체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에는 미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모든 유럽 국가가 우크라이나에 투입한 총액이 약 1,560억 유로(약 221조8,304억 원)인데, 미국은 혼자서 그 절반가량을 부담했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앞서 미국 싱크탱크 미국외교협회는 지난달 "개전 이후부터 올해 7월 31일까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약 768억 달러(약 103조6,493억 원)를 지원했고, 이 중 61%는 군사적 지원이었다"고 공개한 바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이날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은 단지 '시기의 문제'일 뿐"이라며 미국 내 회의론을 애써 축소했다. EU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다짐하며 2024~2027년 500억 유로(약 71조1,225억 원)의 장기 지원을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5일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가 열린 스페인 그라나다에 도착하고 있다. 그라나다=EPA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5일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가 열린 스페인 그라나다에 도착하고 있다. 그라나다=EPA 연합뉴스


유럽에도 퍼지는 회의론… 젤렌스키 "단합을" 강조

그러나 EPC 현장 분위기는 이러한 공식 목소리와 미묘한 온도 차를 보였다는 게 외신들의 평가다. 유럽에서도 '우크라이나를 언제까지 계속 지원해야 하느냐'는 의구심이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EU 회원국인 헝가리는 지난 5월부터 우크라이나에 EU 기금이 투입되는 데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최근 슬로바키아에선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중단'을 공약한 사회민주당(SD·스메르)이 총선에서 제1당을 차지했다. 유럽 내에서 우크라이나 지원 회의론이 확산하는 건 우크라이나가 전장에서 가시적인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것과도 연관이 깊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유럽의 단합을 어느 때보다 강조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군사 장비를 지원하는 건 러시아 무기가 유럽의 다른 국가를 공격하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준다"며 "유럽의 최대 과제는 단결 유지"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지원 축소 가능성을 가장 강하게 일축한 이도 젤렌스키 대통령이었다. 그는 "저는 미국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미국·유럽의 회의론과 싸우는 사이, 우크라이나 동북부 최전선 지역인 하르키우의 흐로자 마을 카페·상점 밀집 지역에선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민간인 52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올레흐 시네후보우 하르키우 주지사는 "마을 인구 5분의 1이 단 한 번의 테러 공격으로 몰살됐다"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텔레그램을 통해 밝혔다고 미국 CNN방송 등은 전했다. 지난해 2월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의 단일 공격으로 최다 민간인 사망자가 나온 사례 중 하나로 꼽힐 전망이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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