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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부검" 강남 초교 학부모 단톡방..."선 넘었다 지적하자 강퇴"

입력
2023.09.27 16:00
수정
2023.09.2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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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 침해' 논란 단톡방 학부모 인터뷰
"온라인 폭력→직접 민원으로 이어져"
'한반도기 배지' 논란 "교사 주의 조치"
학부모 단톡방, '교사 n번방'이라 불려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 학부모 350여 명이 모인 익명 단체카톡방에서 6월 '통일교육주간'에 교사가 학생들에게 준 '한반도기 배지'에 대해 부모들이 나눈 대화 내용. 학부모 A씨 제공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 학부모 350여 명이 모인 익명 단체카톡방에서 6월 '통일교육주간'에 교사가 학생들에게 준 '한반도기 배지'에 대해 부모들이 나눈 대화 내용. 학부모 A씨 제공


"400명 가까이 되는 학부모 익명 단톡방이었는데 학교를 굉장히 감시하고 있었어요. 몇몇 사안에 대해서는 도가 지나쳤고요. 최근 교권 문제가 이슈화된 후에도 과도한 발언이 많아서 '선을 넘었다'고 지적했다가 강퇴당했어요."

강남 A초교 학부모

서울 강남 A초등학교 학부모 B씨는 이달 초 학부모들의 익명 단체카톡방에서 강제로 쫓겨났다. 이 단톡방은 2년 전 개설돼 A초교 학부모 35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단톡방에서 일부 학부모들은 "오늘 아침도 모닝 민원으로 시작했다" "교장이 몸이 안 좋다는데 부검하자" 등 심각한 수준의 교권 침해를 한 정황이 포착돼 논란이 일고 있다. 학부모이자 현직 초등 교사인 B씨는 이달 초 이 단톡방에서 "익명에 기대서 선을 넘고 있다. 학교에 실명으로 민원을 제기해라"고 말했다가 운영자로부터 강제퇴장(강퇴)됐다.

"협박 일삼아...'교사 n번방'이라 불려"

지난해 7월부터 1년 넘게 이 단톡방에 참여한 B씨는 27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단톡방 학부모들은 교사들에 대한 협박을 일삼았고, 온라인상 폭력에만 그친 게 아니라 집단 민원을 넣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지난 6월 학교의 '통일교육주간'에 학생들에게 '한반도기 배지'를 나눠준 한 교사가 단톡방 학부모들의 집중 타깃이 됐다. A초교의 한 교사는 통일교육 활동의 일환으로 한반도기가 그려진 작은 배지를 아이들에게 선물로 줬는데, 일부 학부모들이 단톡방에서 이를 문제삼았다. 한반도기는 통일 한국을 상징하는 깃발로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9년 제정됐고, 남북단일 스포츠팀이 국제대회에서 공식깃발로 사용하고 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외투 위에 한반도기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외투 위에 한반도기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B씨는 "일부 학부모들이 교사가 마치 국가보안법이라도 위반한 양 교사 자질을 운운하고, 보수 언론에 제보하겠다는 둥 교사를 협박했다"고 전했다. 당시 B씨가 캡처한 단톡방 대화 내용을 보면 한 학부모는 해당 교사의 학년과 반을 언급하며 "o학년 o반 담임선생님, 앞으로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실지 지켜보겠다"고 말했고, 다른 학부모는 "진짜 기분 더럽다.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짜로 받은 것을 학생들한테 나눠주는 게 공무원법상 괜찮냐" "이거 oo일보에 제보해야 한다"고 남긴 학부모들도 있었다. 결국 해당 교사는 다음 날 해당 배지를 다시 수거했다. "학교 측에서도 '해당 교사에게 주의를 주겠다'는 입장문을 배포했다"고 B씨는 전했다.

그는 "한반도기 배지는 교육청에서 나눠준 적도 있을 만큼 정부에서 공식 인정한 것"이라며 "일부 학부모들의 사상과 맞지 않는다고 아쉬움을 토로할 수는 있지만, 단톡방에서 교사를 괴롭히는 수준까지 가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B씨는 해당 교사가 실제 학부모들의 민원으로 시달렸을 것 같다며 우려했다. 그는 "교사 커뮤니티에서는 학부모의 단톡방을 '교사 n번방'이라고 부른다"고도 했다.

B씨가 학부모 단톡방에서 강퇴당한 이유도 단톡방 대화를 주도하는 학부모들과 입장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 단톡방에서는 지난 7월 숨진 서이초 교사의 49재에 맞춰 전국 교사들이 대규모 집회를 한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에 대해서도 일부 학부모가 불만을 표했다. A초교는 서이초 인근에 있다. B씨는 이에 "서이초 교사도 학부모 악성민원 때문에 사망했다. 이 공간은 익명에 기대 선을 넘고 있다. 할 말이 있으면 실명으로 학교에 직접 민원을 넣으라"라고 말했다가 쫓겨났다.

"교장 부검" "단톡방 영원했으면"

학부모로부터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사망한 대전 초등학교 교사의 발인이 거행된 9일 교사가 근무했던 교실에 조화가 놓여 있다. 뉴스1

학부모로부터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사망한 대전 초등학교 교사의 발인이 거행된 9일 교사가 근무했던 교실에 조화가 놓여 있다. 뉴스1

전날 교육 전문 매체인 교육언론창 보도에 따르면, 학부모들은 이 단톡방에서 교사들을 상대로 "교장 선생님 몸이 많이 안 좋아지셨나 봐요. 부검해 봐야 할 듯" "미친 여자" 등 무차별적인 조롱과 욕설, 비난 등을 쏟아냈다.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교사를 압박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일부 학부모들은 "아빠들 나서기 전에 해결하세요. 점잖은 아빠들 나서면 끝장 보는 사람들이에요. 괜히 사회에서 난다 긴다 소리 듣는 거 아니에요"라며 사회적인 권력을 내세우기도 했다. 한 학부모는 "저는 이 익명(단톡) 방이 영원했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힘을 가진 느낌 있잖아요. 우리들 톡을 통해 많은 샘들 신상에 변화 생긴 거 다 봤잖아요. 저만 쓰레기인가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단톡방의 대화가 실제 민원으로 이어져 결국 교사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21년 9월 과밀학급 해소를 위한 임시 조립식(모듈러) 교실 건립에 반대하는 부모들이 처음 만든 이 단톡방은 이후 교사들을 조리돌림하는 공간으로 변질됐다고 한다. 초등교사노조는 "해당 학교 교사들은 비정기 전보, 의원면직(사직) 등 학교 탈출 희망, 불안 호소, 교육활동 어려움 토로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노조는 "지난 2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교원지위법 상 협박, 인신공격, 교육활동 존중의무 위반 등 심각한 교권침해"라며 ""서울시교육청은 관련 자료를 수집해 고발 조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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