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초교 학부모 '교권침해' 단톡방 논란... 노조 "교육청이 고발해야"

입력
2023.09.27 15:55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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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정책 반대해 수백명이 대화방 개설
민원 사실 공개·독려로 집단행동 정황
교장을 언급하며 "부검하자" 모욕도
서울시교육청 "상황부터 파악해 봐야"

교사들이 16일 국회 앞에서 열린 공교육 회복을 위한 국회 입법 촉구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교사들이 16일 국회 앞에서 열린 공교육 회복을 위한 국회 입법 촉구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서울 강남구 A초등학교 학부모들이 단체 대화방에서 교사를 모욕하고 학교에 조직적으로 민원을 제기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달 국회를 통과한 교원지위법은 학부모가 부당한 민원을 반복적으로 제기하는 행위를 교권침해로 규정하고 있다. 노조는 교육당국이 즉시 사건을 조사해 고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27일 초등교사노조, 인터넷매체 교육언론창 등에 따르면, 2021년 9월 개설된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A초를 사랑하는 모임'에는 이 학교 학부모들이 익명으로 교사에게 인신공격성 발언을 하거나 학교에 민원을 제기한 사실을 공유하는 글들이 다수 올라왔다. 과밀학급 해소차 모듈러 교실(조립식 임시 교실)을 설치하려는 학교 측 결정에 반대하려 만들어진 이 대화방은 300명 이상이 참가해 2년가량 운영되다가, 전날 대화방에서 오간 대화를 폭로한 교육언론창의 보도 이후 폐쇄됐다.

공개된 대화 내용 중에는 "오늘 아침도 모닝민원과 함께 시작해 보아요" "교장 멱살 한 번 제대로 잡혀야 정신 차릴 듯" 등 학교에 민원을 넣은 사실을 공유하거나 독려하는 내용이 여럿이었다. "(대화방을 통해) 솔직히 힘을 가진 느낌이 있잖아요? 우리들 톡을 통해서 많은 샘들(선생님들) 신상에 변화 생긴 것을 다 봤다"며 집단행동 효과에 만족해하는 글이 있는가 하면, "점잖은 아빠들 나서면 끝장 보는 사람들이에요. 괜히 사회에서 난다 긴다 소리 듣는 게 아니에요"라며 학부모의 사회적 지위를 학교 압박에 동원할 수 있다는 투의 글도 있었다.

교사들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여겨질 법한 대화도 있었다. 대화방 개설 며칠 뒤 교장의 건강이 안 좋아 보인다는 점을 거론하며 "부검하자"는 막말과 동조 댓글이 올라오는가 하면, 교장을 "미친 여자"라고 험담하는 글도 있었다.

본보 취재 결과 올해 상반기에는 이 학교 교사가 통일교육을 진행하며 한반도기가 그려진 배지를 학생들에게 나눠준 일을 두고 학부모들이 대화방에서 불만을 드러내며 학교를 압박한 정황도 있었다. 이 학교 학부모 B씨는 "법령에 따른 통일주간에 담임선생님이 관련 교육을 하면서 말미에 손톱만 한 크기의 한반도기 배지를 아이들에게 배부했다"며 "이후 대화방에서 '애들을 학교에 보내도 되는 거냐' '어떻게 애들 의식을 움직이려고 하냐'는 얘기가 오갔고, 학교에 대처한다는 글도 공유됐다"고 말했다.

초등교사노조가 정리한 A초 학부모 단체 대화방 속 발언들. 초등교사노조 제공

초등교사노조가 정리한 A초 학부모 단체 대화방 속 발언들. 초등교사노조 제공

초등교사노조는 이러한 대화 내용을 두고 "학교 행정과 교육에 대한 정상적 감시와 참여 활동의 선을 뛰어넘는 교권침해"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교원의 실명이나 직급, 담임반을 거론하며 누군지를 특정하고 겁박, 개인정보 유출, 교육활동 존중의무 위반, 인신공격 등의 행각을 벌인 사실이 다수 확인됐다"며 "실제로 이런 악성 민원과 교원 괴롭힘 때문에 A초등학교 교원들은 비정기 전보, 의원면직 등으로 학교 탈출을 희망하고 불안을 호소해 왔다"고 주장했다.

초등교사노조는 A초등학교를 관할하는 서울시교육청이 학부모들의 교권침해 행위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고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2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교원지위법 개정안은 '목적이 정당하지 않은 민원을 반복적으로 제기하는 행위'를 교권침해 행위에 새로 포함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사실 확인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어젯밤에 막 (사안을) 인지한 상황"이라며 "관련 내용들을 확인해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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