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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는 것만 같던, 가족의 뒷모습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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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 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기쁘게 만나 싸우며 헤어진다.'
명절에 만난 가족을 표현한 우스갯소리에 실소가 터진다. 오랜만에 함께 하는 식사가 반가운 마음은 분명 진심이었다. 그런데 지난 명절을 돌아보면 기분 상한 일이 먼저 떠오르곤 한다. 가족이란 단어가 만든 허구의 친밀감이 서로를 잘 안다는 착각을 부른 게 어긋난 대화의 시작은 아니었나 짐작해 본다.
추석을 앞두고 공선옥의 '병든 어머니를 수레에 싣고 갈 적에'(계간 문학동네 2023 가을)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은 한층 깊어졌다. 소설 속 화자는 3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부쩍 말을 잃고, 어느 날엔가는 치매 초기 비슷한 증상도 보이는 아버지 곁을 지키며 대화하다 보니 전과는 다른 모습을 조금씩 발견하게 된다. 작가는 한 인간으로서 아버지, 어머니의 삶을 점차 받아들이는 과정을 차분하게 그렸다.
화자 '나'는 자신의 스마트폰 속에 우연히 녹음된 아버지와의 대화를 듣고 나서 본격적으로 대화 녹음을 시작한다. 하지만 온 가족이 묻어 둔 그 일에 대해 물어도 될지가 고민이다. 바로 법률사무소 사무장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지프차에 실려가 석 달 만에 돌아온 사건이다. 아버지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고, 가족 중 누구도 그 일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밥을 먹던 아버지가 "아부지가 망했다, 이?"라고 "툭" 말을 던졌다. 그 후 아버지가 "넋이 빠진 사람"이 돼 버렸기에 그 순간은 나에게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돈벌이를 그만둔 아버지는 천지사방 사진을 찍으러 다니기만 했고, 생계는 어머니 홀로 책임졌다.
그 일이 벌어졌을 때 몹시 어렸던 나는 당시 아버지에게 벌어진 일을 단편적으로만 기억한다. 한 가지는 그 전해 아버지가 죽마고우에게 사기를 당한 일이다. 다른 하나는 망년회에서 유신헌법 선포에 대해 묻는 질문을 받은 아버지가 "북한 괴뢰 도당들이 하는 짓과 다름이 없다"고 말하고선 만취해 만세를 연신 불렀는데 그 앞에는 '박정희'도 붙고 '김일성'도 붙었다는 것이다. 조각난 정보로 어렴풋이 추측만 한 세월이 50년이다. 불편함 내지 걱정스러움에 나는 그 해 그 석 달에 대해 직접 질문을 던지지 못한다. 아버지는 사기를 친 친구 얘기에도 "그 사람이 의도를 갖고 그런 게 아니"라고 했고, 그저 "의기가 확 꺾이더라"고만 했다. 듬성듬성한 대화 사이로 나는 아버지의 망했다는 말이 "선언이었음"을 알게 된다.
부모의 삶을 파고든 화자에게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에 대해 한 말은 풀어야 할 퀴즈이자 그들의 삶을 풀어낼 열쇠가 된다. 돈도 안 벌고 사진만 들여다보는 "니 아빠를 볼 때마다 얼마나 여기가 나려앉았는지 모른단다"며 지그시 가슴을 눌렀던 엄마. 엄마와 사는 것이 좋았느냐는 물음에 "좋으나 마나, 병들은 어머니를 수레에 실코 갈 적하고 매한가지였지"라고 말한 아버지. 며칠을 낑낑대도 딱 떨어지는 답을 구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지 모르지만.
돌아보니 그때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셨느냐(혹은 너는 어땠느냐) 궁금한 일이 하나쯤은 있다. 한 번은 물어볼 수 있을까. 대단한 가족애라기보다는 약간의 다정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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