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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0...업무가 두렵다" 숨진 군산 교사 유서 공개

입력
2023.09.18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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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휴대폰 메모장에 쓴 유서 공개
"교사가 수업에 집중하는 환경 되길"
업무 스트레스... 관리자와 갈등 암시

초등교사 A씨가 근무하던 전북 군산시의 한 초등학교 앞에 지난 2일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전북교사노조 제공

초등교사 A씨가 근무하던 전북 군산시의 한 초등학교 앞에 지난 2일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전북교사노조 제공

과다한 업무와 상급자의 괴롭힘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다 숨진 초등교사 A씨의 유서가 공개됐다.

지난 1일 사망한 전북 군산의 한 초등학교 교사 A씨가 휴대폰에 사망 전 이틀(8월 30, 31일)간 메모 형태로 적은 유서를 연합뉴스가 18일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유서에는 과다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곳곳에 녹아 있었다. 사망 전날 A씨는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너무 안 돼서 힘들다", "모든 미래, 할 업무들이 다 두렵게 느껴진다"고 적었다. 또 "업무 능력, 인지 능력만 좀 올라왔으면 좋겠다, 나 잘했었는데. 군산 1등, 토익 고득점", "자존감이 0이 되어서 사람들과 대화도 잘 못하겠다"고 토로했다.

전북교사노조에 따르면 A씨는 격무에 시달렸다고 한다. A씨가 근무한 학교는 전교생이 10명인 작은 학교로, 교원이 교장과 정교사 3명, 강사 2명 등 6명뿐이었다. A씨는 4학년과 6학년 합반 담임을 맡으며 방과 후 교실, 돌봄, 정보, 생활, 현장체험학습, 에듀테크 등의 업무까지 전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지난 6월 동료 교사에게 "나도 이제 나름 10년 했는데 이렇게 학교 생활 힘들게 하긴 처음이다", "학교 일로 스트레스 받아 본 건 처음이다. 내 인생에서 학교 일은 열에 하나, 둘이었는데 지금은 여섯, 일곱이 돼 버렸다" 등 업무 압박감을 호소하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유서에는 학교 관리자와의 갈등을 암시하는 내용도 있었다. A씨는 사망 전날 "개학하고 관리자 마주치며 더 심해진 것 같다, 늘 뭔가 태클을 걸고 쉬이 안 넘어가며 극P"라고 적었다. 'MBTI(성격유형검사)'의 한 갈래인 'P'는 즉흥적인 성향을 뜻하는데, 유족은 평소 계획적인 성격의 A씨와 마찰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앞서 전북교사노조는 교장이 A씨의 업무 결재를 모두 반려하고, 교장 관사에 놓을 가구를 옮기게 하는 등 괴롭힘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유족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평소 고인이 업무 스트레스를 언급하면서, 업무 가짓수가 너무 많아서 힘들어 했다"며 "교사가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본연의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바란다"고 유서 공개 이유를 밝혔다. 또 "그가 평소 열심히 일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아주고 인정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족은 A씨가 사망 전 정신건강의학과를 2차례 내원해 상담 및 치료를 받았다고 전했다.

전북교사노조는 A씨의 사인을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보고 순직 인정을 촉구했으며, 관리자 갑질 의혹과 관련한 진상 규명을 위해 전북교육청에 감사를 신청했다.

전북교원단체연합이 12일 오전 전북 전주시 전북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일 숨진 채 발견된 초등교사 A씨의 순직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전주=연합뉴스

전북교원단체연합이 12일 오전 전북 전주시 전북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일 숨진 채 발견된 초등교사 A씨의 순직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전주=연합뉴스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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