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부 공화당의 마지막 공화주의자

입력
2023.09.2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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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1 남부전략과 린우드 홀턴

2012년 사위 티머시 케인(민주당)의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 당선 축하연에서 기뻐하는 전 공화당 정치인 린우드 홀턴. AP 연합뉴스

2012년 사위 티머시 케인(민주당)의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 당선 축하연에서 기뻐하는 전 공화당 정치인 린우드 홀턴. AP 연합뉴스

민주당 아성이던 미국 남부 주들이 공화당 표밭으로 급선회한 것은 1960년대 공화당의 이른바 ‘남부 전략(Southern Strategy)’부터다. 1964년 대선에서 민주당 린든 존슨에게 패한 공화당은 남북전쟁 이래 에이브러햄 링컨이 심어 놓은 당의 이미지를 180도 뒤집는다. 연방이 아닌 각 주의 자치권을 옹호하고 인종주의 지역정서에 동조하는 전략. 저 ‘남부 전략’에 힘입어 공화당 리처드 닉슨은 1968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1854년 북부 상공인 계층을 기반으로 출범한 공화당의 핵심 강령은 연방정부 권한 강화와 노예제 반대였다. 남북전쟁 승리 후 공화당은 1929년 대공황으로 1932년 대선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민주)에게 패할 때까지 약 70년간 집권했다. 당시 민주당은 공황 책임, 즉 공화당의 ‘친기업 노선’을 집중 공격했다. 그렇게 빼앗긴 권력을 되찾아온 게 닉슨이었고, ‘남부 전략’이었다.

린우드 홀턴(Linwood Holton Jr., 1923.9.21~ 2021.10.28)은 남부의 전환기였던 1969년 버지니아주 주지사 선거에서 남북전쟁 이후 100년 만에 처음 공화당 후보로서 당선(득표율 52.51%)된 인물이다. 하버드대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를 거쳐 공화당 불모지였던 버지니아의 공화당원으로 정치를 시작한 그는 1955년과 1957년 하원 선거와 1964년 주지사 선거에서 잇따라 낙선한 끝에 저 승리를 이뤘다. 1970년 1월 취임 연설에서 그는 “어떤 시민도 인종 때문에 우리 사회의 축복과 책임에서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며 ‘남부 전략’에 맞서 전통의 공화주의를 고수했고, 주 정부 요직에 흑인들을 대거 발탁했고, 자신의 세 아이를 흑백 통합 공립학교로 전학시켰다.

주지사 연임금지 규정 때문에 1974년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지만, 당시 그의 지지율은 무려 77%에 달했다. 하지만 70년대 이후 당 노선은 그의 신념과 급격히 멀어졌고, 그는 1978년 상원 선거 당내 경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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