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함부로 덤비고 나불대지 마"... 교사 협박하고 뺨 때려도 고작 벌금 300만 원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함부로 덤비지 마세요. 그런 식으로 나불대지 마시고"
(중학교 교사 A씨가 학부모 지인 B씨로부터 받은 문자 메시지)
# 한 중등 교사 A씨는 3년 전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의 학부모로부터 협박을 당했다. 해당 학생의 학교폭력 조사 과정에서 A씨가 피해 학생을 오히려 협박했다는 게 학부모 측 주장이었다. 학부모는 법률사무소 사무장인 지인 B씨까지 대동해 A씨에게 아이를 협박한 사실이 있냐고 추궁했다. A씨가 부인하자 협박이 시작됐다. 피해 학생의 학부모와 B씨는 A씨에게 밤낮 수시로 전화하거나 문자 메시지 등을 보내 "함부로 덤비지 마세요" "공갈, 직무유기로 고소하겠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A선생님뿐 아니라 다른 선생님과 교장선생님까지 문제가 될 겁니다. 감수하세요"라고 했다.
언론에 문제를 제기하겠다고도 A씨를 압박했다. 실제 B씨는 한 언론에 '○○행사를 기획한 교사가 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학부모를 설득하고 학생들을 회유,공갈 협박해 학교폭력을 덮었다'는 내용의 허위의 글을 기고했다.
A씨는 해당 사건과 관련 학부모가 아동학대로 고소한 데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폭력 교사'로 낙인찍혀 학교 안팎에서 만신창이가 됐다. 이에 A씨는 학부모 지인인 B씨를 협박과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했다. 사건 발생 2년 뒤에서야 법원은 A씨 손을 들어줬다. B씨는 지난해 7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A교사가 학교폭력 은폐를 시도했다고 볼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고, 오히려 사건 해결을 위해 학생과 면담하는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해주려고 노력했던 사실만 확인됐다"며 "피고인은 피해자를 오히려 학교폭력을 은폐했을 뿐 아니라 이를 홍보까지 한 파렴치범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고인이 공익적인 목적이었다고 주장하지만 그 정도를 넘었고, 피해자를 협박하고 명예를 훼손했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서울 서이초 사건' '대전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교사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학부모의 악성민원이 공분을 사고 있지만, 정작 악성민원에 대한 법적 처분은 대부분 벌금형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법으론 학부모의 악성민원을 막기엔 역부족이어서 온라인상에서 가해 학부모 신상정보가 공개되는 등 과도한 사적 제재가 횡행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일보가 최근 2년간 학부모 악성민원 관련 사건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실형을 선고받은 학부모는 한 명도 없었다.
학부모가 교사를 폭행해도 고작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는 데 그친 사례도 있었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경북 포항의 한 초등학교 5학년 담임교사 C씨는 지난해 9월 학부모 D씨로부터 뺨을 맞았다. D씨는 다짜고짜 반으로 들어와 "우리 애한테 엉덩이 춤춘 XXX 누구야"라며 자신의 아이를 놀린 학생을 찾아내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를 제지하기 위해 C씨가 상담실로 안내했고, D씨는 상담실에서 C씨의 왼쪽 얼굴을 세게 때렸다. D씨는 "자녀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아 화가 났다"고 폭행 이유를 밝혔다. C교사는 약 2주간 치료가 필요한 타박상을 입었다. 정신적 충격은 더 컸다. 하지만 법원은 지난해 11월 D씨에게 상해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2021년 7월 충남 천안에서는 또 다른 학부모 E씨가 아들이 재학 중인 한 초등학교 교무실을 찾아가 "교장선생님과 상담하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교사로부터 "무단으로 들어오면 공무집행에 방해된다"는 안내를 받았지만 경찰관이 출동할 때까지 퇴거 요구에 불응하며 난리를 피웠다. 법원은 지난 3월 E씨에 대해 퇴거불응죄로 벌금 20만 원을 선고했다.
경남도교육청에서 만든 민원 서비스 지침서 '교육민원 톡톡'에 따르면 △모욕죄는 1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 원 이하 벌금 △협박죄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 △반복전화와 반복문자는 10만 원 이하 벌금, 구류 또는 과료 등이다.
교육당국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 당국은 학부모의 폭언과 폭행을 '특이민원'으로 규정하고 심할 경우 교육청의 법률지원을 받아 법적 절차를 하라고 안내한다. 하지만 최근 숨진 대전 교사 사건 등에서 보듯 악성민원 시달리는 교사들이 교육청의 법률지원을 받기란 사실상 어렵다. 교권침해로 학부모와 소송을 했던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교사 괴롭힘 행위가 법적으로 대부분 처벌이 가벼운 반면 법적 절차를 밟는 동안 교사가 감당해야 하는 부담감은 너무 크다"며 "이 때문에 주변 교사들도 대부분 그냥 참고 넘어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 역시 교권침해로 인한 트라우마에 4년째 복직하지 못하고 있다.
사업주에게 고객응대 근로자에 대한 폭언과 폭행을 방지할 책임을 지운 산업안전보건법 41조도 교사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교사 출신 전수민 법무법인 현재 변호사는 "국가공무원법 적용을 받는 교사는 크게 보면 근로자이지만 산안법 적용을 받는다는 판례는 아직 없어 논란이다"라며 "악성민원을 막기 위해선 교권침해를 규정한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의택 법률사무소 으뜸의 대표 변호사는 "학부모가 교사에게 악성민원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괴롭히는 경우는 많지만, 실제 교사들이 이에 대응할 법이나 사회 시스템은 마련돼 있지 않다"며 "악성민원에 대한 제도적 보완 등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