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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 잃은 국회, 옥죄는 대통령제

입력
2023.09.15 18: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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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의의 전당이 막말과 조롱으로 얼룩
의회민주주의 실종된 자리 꿰찬 활극
대통령제 바꿀 개헌에 주권 행사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동훈(왼쪽) 법무부 장관이 8일 국회 대정부질문 도중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웃음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왼쪽) 법무부 장관이 8일 국회 대정부질문 도중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웃음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요즘 국회에 출석하면 야당 의원들은 ‘깐족거리다’라는 말을 빼놓지 않고 던진다. 시도 때도 없이 정치적 싸움을 걸어오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한 장관이 또박또박 반격에 나서자, 체면을 구긴 안민석 정청래 최강욱 등 전투력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의원들이 꺼낸 카드다. 다만 한 장관 모습에 “통쾌하다”고 손뼉 치던 보수를 자처하는 지인들도 어느새 식상했는지 “그래도 장관인데 너무 가벼워 보인다”라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 초선 국회의원이 4년의 임기 동안 전국적 지명도를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의정활동에 방송출연까지 아무리 애를 써도 이름 석자 알리는 게 만만치 않은데 임기 막바지에 ‘쓰레기’ 발언으로 유명해진 의원이 있다. 잦은 급발진으로 내부 징계까지 받은 북한 외교관 출신 국민의힘 초선 태영호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말을 되받아쳤다는 박영순 민주당 의원인데, 전대협 부의장을 지낸 전력 때문에 북한이탈주민을 향한 86운동권 전체의 시각을 확인시키는 역할까지 했다.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존중돼야 할 민의의 전당이 국회의원과 국무위원들의 막말과 조롱으로 넘쳐난다. 참담한 현실이지만 품격을 얘기하는 이는 극히 드물다. 되레 그런 모습에 환호하는 극렬 지지층을 보면서 우쭐하는 정치인들 때문에 입법부의 권위는 한없이 추락 중이다. 품격이 사라진 공간을 꿰찬 건 활극이다. “싸우라”는 지시를 내린 대통령은 전투력이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전직 대통령의 “모가지를 따는 건 시간문제”라고 언급한 사람을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이에 질세라 개인의 사법리스크를 당 전체로 물고 들어간 제1야당 대표는 정기국회 시작과 동시에 출구 없는 단식 투쟁으로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보름을 넘기자 단식 현장에서 선혈이 낭자한 일도 벌어졌다.

의회민주주의 회복의 답은 있는데 5년 단임의 대통령제라는 사슬이 너무 꽉 국민들을 옥죄고 있다. 싸구려 국회에 발을 들이려는 양질의 인사가 없으니, 입법부에서 국민들의 바닥 민심을 제대로 고민해 본 대통령 후보도 배출되지 않는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최초로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대통령이 선출됐고, 직전 대통령도 대선 가도에서 여의도를 환승역처럼 거쳤을 뿐이다. 국민들은 갈라지는데 통합은 안중에 없고, 우리 편만 챙긴다. 적폐세력이 반국가세력으로 바뀌고, 검사 윤석열이 군인 박정훈으로 대체되는 데칼코마니 같은 현실을 우리가 마주하는 이유다.

제왕적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반민주적 권력구조와의 결별이 임박했다는 신호가 켜진 지 오래지만 그 가능성은 '0'으로 수렴된다. 차기 대통령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야당 대표는 억울한 탄압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대권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공고해질 테고, 그 야당 대표를 ‘피의자’로만 생각하는 국무위원 역시 여권 인사 중 차기 대통령 지지율 1위라는 유혹을 떨쳐내기 힘들 것이다. 이념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은 30%의 국민들이 그들의 안중에 들어올 리 없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수준의 국민적 요구가 들불처럼 번지지 않고서는 권력구조를 바꾸는 개헌은 국회의장들이 부르는 ‘희망가’ 수준을 넘지 못한다.

얼마 전 국회에서 한 국무위원이 “대한민국 국민 5,000만 명이 모두 주권자로서 권력을 행사한다면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때 군부독재에 반발하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까지 산 정치학자 출신이 “주권의 소재와 행사를 구분하자”면서 한 얘기였다는데, 야당 의원들만 발끈할 일인지 개헌과 맞물려 한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성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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