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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우려" 83%에도 "유지· 확대를" 45%...'당장 포기 못할 원전' 딜레마 [여론 속 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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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7월은 지구 역사상 가장 더웠던 달로 기록됐다. 기록적인 폭염과 수해, 가뭄 등 이상기후로 전 세계가 신음하는 가운데,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 온난화 시대가 끝나고 지구 열대화 시대가 시작됐다"고 경고했다. 전 세계가 손 놓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세계 각국에서는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통해 화석연료와 온실가스를 줄여 나가 탄소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Net-zero) 계획을 세운 바 있다. 우리나라도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발표해 대열에 합류했지만 화석연료 대체 방법에 대해서는 합의점에 도달하기 위한 논의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팀은 7월 7일부터 10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에너지 정책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다. 이번 조사를 통해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인식 지형과 에너지원에 대한 수용성을 측정해 향후 탄소중립 계획 추진에 참고할 수 있는 시사점을 도출했다.
대부분이 전 지구적으로 이상기후현상이 자주 발생(95%)하며 기후변화를 체감(92%)한다고 응답했다. 또한 기후위기대책이 지상과제라는 점에도 86%가 동의했다. 주변사람들보다 전기절약을 실천한다(72%), 에너지문제에 대한 관심이 많다(70%)는 응답도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그러나 에너지 정책에 대한 관심도와 지식 수준은 다소 다른 양상을 보였다. 탄소중립(41%), 에너지전환(36%), 파리기후협약(30%) 등 최근 기후위기와 관련해 자주 언급되는 단어나 개념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응답은 절반에 못 미쳤으며, 들어봤지만 자세히 모른다는 응답이 60%에 육박했다. 일반 대중의 높은 관심도가 지식 수준의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에너지 정책 관련 부처와 기관, 환경단체들의 실효성 있는 홍보전략이 요구된다.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이 에너지 발전에 대한 가치관과 에너지원 선호도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발전에 있어 환경보전이 더 중요하다는 응답이 과반(52%)으로 나타났으며 경제적 효율성(24%)이 중요하다는 응답의 두 배 이상이었다. 단순히 값싼 연료를 사용하기보다는 환경 비용, 사회적 비용을 고려해 전력을 생산하자는 ‘환경급전론'이 대세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가치관 분포가 에너지원별 선호도에 있어서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에너지원별 발전 포트폴리오, 즉 ‘에너지믹스’를 묻고 평균값을 산출한 결과 신·재생에너지(42%), 원자력(23%), LNG(17%) 순이었다. 현 정부가 발표한 2030년 목표인 원자력(32%), 신·재생에너지(22%)와 다소 괴리감이 느껴지는 수치다. 또한 LNG(17%), 석유(10%), 석탄(7%)도 여전히 35%를 차지해 현실적으로 화석연료와의 이별이 쉽지 않다고 여기고 있었다.
경제적 효율성과 안전성 측면에서도 신·재생에너지와 LNG가 원자력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생산 단가, 건설·해체 등 비용을 고려했을 때 사람들이 가장 경제적이라고 평가한 것은 LNG(73%)와 신·재생에너지(69%)였으며 원자력은 62%로 나타났다. 한편 환경오염, 정전사태, 안전사고 등 위험요인을 고려할 때 안전하다는 응답이 가장 높은 에너지원은 신·재생에너지(86%)였으며 LNG(64%)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에 원자력(26%)은 석탄(28%)보다도 안전하다는 응답 비율이 낮았으며, 위험하다는 응답은 70%에 달했다.
재생에너지는 기후위기 대응에 이상적인 에너지원이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어렵다고 여겨져왔다. 하지만 그간의 통념과 다르게 이번 조사 결과를 보면 재생에너지가 현실적인 경쟁력도 충분히 갖춘 에너지원으로서 인정받는 것으로 보인다. 친환경적(86%)이며 지속가능(82%)할 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의 단점으로 지적을 받아왔던 생산 단가의 경제성(71%), 전력공급 안정성(66%) 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일자리 창출 효과(78%), 에너지 안보 강화(74%)는 원자력 대비 20~30%포인트가량 긍정 응답 비율이 높았다(원자력은 각각 48%, 55%).
재생에너지 수용도도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도 에너지전환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인식(88%), 기술 발전을 통한 발전 비용 절감의 기대(86%),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재생에너지 발전 가속화(79%), 원자력보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중요하다는 인식(76%) 등 재생에너지 발전 강화의 필요성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였다. 풍력 및 태양광 발전의 지속적인 이용, 신규 발전소 건설에 대해서도 응답자 10명 중 8명이 긍정적으로 반응했으며 거주 지역에 새로운 태양광, 풍력 발전소를 짓는 것에 동의하는 응답도 70%를 상회했다.
반면에 원자력 발전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원전 사고 예방의 불확실성(83%), 핵폐기물 처리 문제 심각성(79%), 인구 밀집지역 근처에 집중 분포해있는 원전의 사고 위험성(77%) 등이 주된 위험요인으로 인식됐다. 신규 건설과 해체 비용 때문에 원자력이 저렴하지 않다, 특정 지역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의견도 각각 60%에 달했다. 원전 사고에 대한 공포심리는 과한 것이 아니다(48%), 원전의 위험성을 기술적으로 충분히 통제하기 어렵다(46%)는 응답도 절반에 가까웠다. 거주 지역의 신규 원전,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에 대한 수용도 또한 37%, 31%에 불과해 님비현상 해결이라는 과제를 남겼다.
그러나 원전을 지속적으로 이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셈법이 다소 복잡해보인다.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해서 ‘원전 축소’ 여론으로 온전히 이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30년 후, 2050 탄소중립 달성에 이르기까지 신·재생에너지와 원전 정책 방향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본 결과, ‘신·재생에너지 확대 및 원전 축소’ 응답이 55%(점차 축소 43%+탈원전 12%), ‘원전 규모 유지 및 확대’ 응답이 45%(강화·확대 18%+유지 27%)로 나타났다. 신·재생에너지의 확대, 원전 축소 응답이 상대적으로 많지만, 어느 한쪽으로 뚜렷하게 기울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기적으로는 원전 수용도가 더 높게 나타났다. 원전을 계속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과반(58%)이 동의했으며 신규 원전 건설을 수용할 수 있다는 응답 비율(45%)도 절반에 가까웠다. 원전 기술의 지속적인 성장 필요성에도 61%가 찬성표를 던졌다.
원전과 관련된 이러한 이중적인 인식 지형은 위험성에 대한 우려 못지않게 원전의 편익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도 크게 작용한다는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은 원전이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가능하게 하고(70%) 발전단가가 저렴(68%)해서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으며(69%) 나아가 탄소중립으로 가는 데 현실적인 대안(60%)이라고 답했다. 위험하고 친환경적이지 않아서 장기적으로는 줄여야 하지만 당장에는 원전이 포기할 수 없는 선택지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 발전과 원전이 대립관계가 아니라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공존’이 가능할 것으로 보았다.
원전 관련 이슈가 복합적인 만큼 에너지 정책에 있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에너지 정책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뤄졌다는 데 동의한 비율은 27%에 그친 반면 에너지 정책이 정치 성향과 이념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응답 비율은 70%에 달해, 에너지 문제가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된 현 상황을 국민들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더 나아가 정파성과 이념이 아닌,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라 에너지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61%)고 주문했다.
선진국들도 각자 다른 노선을 택한 것을 보면 에너지 정책에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독일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올해 4월 탈원전을 완수한 반면, 이미 전력 생산의 절반 이상이 원전인 프랑스는 원전 6기를 추가로 지을 예정이다.
우리나라도 2050 탄소중립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보다 합리적이고 실현가능한 에너지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원전을 장기적으로는 줄여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상대적 다수로 나타났지만 재생에너지 발전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과정에서 당장은 원전의 비중과 역할을 간과할 수 없는 딜레마도 관측되었다. 갈등이 첨예한 사안인 만큼 에너지 문제가 자칫 정파적 대립으로 번지지 않도록 정부의 섬세한 접근법이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에너지 정책 전반에 대한 공론화 과정을 통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할 것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에너지 정책 추진체계를 확립해 탄소중립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현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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