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꿈, 김정은의 꿈

입력
2023.09.1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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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동방경제포럼이 열릴 예정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교 주변에 현지 러시아 경찰들이 7일 배치돼 있다. 동방경제포럼은 10일부터 나흘간 열린다.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동방경제포럼이 열릴 예정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교 주변에 현지 러시아 경찰들이 7일 배치돼 있다. 동방경제포럼은 10일부터 나흘간 열린다.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마음이 원치 않으면 할 수 없는 이유를 찾게 되고, 하고자 한다면 해야 할 이유를 찾는다.”

2014년 겨울 취재차 러시아 모스크바를 찾았을 때 극동개발부 장관이 남북러 협력을 역설하면서 한국이 움직이지 않는다며 푸념한 말이다. 인상적인 표현이었다. 그는 러시아 하산~북한 나진항 철도 연결, 남북러 연결 무역 등이 현실화 단계에서 주춤거리는 걸 안타까워했다. 러시아 천연가스를 북한을 거쳐 남한까지 연결하는 가스관 사업이나 시베리아 철도 연결 구상까지 나올 시기였다. 지금의 한미일 협력 못지않게 남북러 협력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았다.

□러시아가 당시 우리 자본과 기술에 목맸던 까닭은 '푸틴의 꿈'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집권 3기인 2012년 ‘신동방정책’을 내놓았다. 성장 잠재력이 큰 시베리아와 극동에 대한 대규모 개발 전략이다. 푸틴은 극동개발이 21세기 중대과제라고 선언했다. 극동개발부를 만든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무단점령, 북한의 핵실험 도발 등으로 남북러 협력에는 큰 제동이 걸렸다.

□매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도 신동방정책의 일환이다. 원년인 2015년 푸틴은 블라디보스토크를 자유항으로 선언할 정도로 포럼 활성화 의지를 불태웠다. 300년 역사의 극동 함대 사령부도 인근 포키노로 옮겼다. 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이 참석했고,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도 모습을 나타낼 정도로 권위와 위상, 투자협약 규모도 높아 갔다. 북한도 대외경제상을 보냈다.

□10일부터 나흘간 열리는 올해 동방경제포럼은 뜻하지 않게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 포럼 행사 기간에 푸틴을 만날 것이란 뉴욕타임스 보도 때문이다. 경제협력이 아니라 무기거래가 주목적이라서 문제다. 전쟁으로 포탄, 중화기가 급한 러시아와 핵추진 잠수함 등 첨단 군사기술이 필요한 북한 간의 거래가 이루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푸틴이 '김정은의 꿈'을 이뤄 주게 된다면 푸틴의 꿈도, 남북러 협력의 꿈도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정진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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