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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대령과 해병대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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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채모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항명 등 혐의로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지난주 군사법원에 출두하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영장심사를 받으러 가는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해병대 사관(OCS 90차) 81기 예비역을 중심으로 10여 명의 해병전우가 그를 외롭게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듯 두 손을 꼭 잡고 길 한복판을 행진하듯 당당하게 걸었다. 현장 풍경만 보면 “해병대 살아있네!”라는 탄성이 나올 만큼 뜨거운 동료애가 전해졌다.
□ 동기회장은 “박 대령이 동기 없이, 전우 없이 혼자 시궁창에 들어간다”며 ‘팔각모 사나이’를 부를 것을 제안했고 우렁찬 해병군가가 국방부 후문 앞에 울려 퍼졌다. 박 대령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시궁창은 뭘 의미할까. 해병대 교육과정 중 온갖 오물이 고인 하수구나 더러운 곳에서 기어가는 훈련을 말한다. 극한의 상황에 적진을 침투하거나 탈출할 때를 대비한 것이라 한다. 가장 진한 우정은 생사를 함께한 전우애일 테니 이해가 가는 장면이다.
□ 해병에 관한 어록은 넘쳐난다. 주위 해병 출신들에게 들어 기억하는 말만 나열해도 이렇다. 해병은 전쟁터에서 외롭지 않다, 절대로 전우를 버리고 오지 않기 때문이다. 취업이 안 되면 어느 동네든 있는 조기축구회나 해병전우회 컨테이너박스로 가서 상담하면 해결된다. 해병은 죽어서 천국에 간다, 지옥에서 살아 돌아오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 무기는 해병과 그의 손에 들린 소총이다.
□ 국민 마음속에 해병이 살아있는 건 전쟁 발발 시 상륙작전 등 가장 위험한 전장에 투입되는 병력이기 때문이다. 항명죄로 바뀌긴 했으나 박 대령에게 처음 적용된 혐의는 ‘집단항명 수괴’였다.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도둑질한 전두환 신군부에게나 어울릴 무시무시한 단어다. 한 젊은 해병이 왜 죽어야만 했는지 철저하게 밝혀 다시는 이런 사고가 없도록 하는 일은 해병 후배를 향한 진한 전우애가 바탕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불거진 수사외압 등 논란은 빨간 명찰에 팔각모를 쓴 해병대 정신이 흔들리지 않도록 한 점 의혹도 남겨둬선 안 될 일이다. 병역을 피하긴커녕 스스로 ‘지옥훈련’을 택하며 강인하게 태어난 해병들의 명예가 걸린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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