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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버림받은 무당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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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커밍아웃부터 하고 시작해야겠다. 나는 여당인 국민의힘 지지자도,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도 아니다. 그렇다고 제3의 특정 소수정당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적어도 현재 그렇다. 그러니 무당층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필자 같은 무당층이 30% 안팎(한국갤럽)을 오간다고 한다. 대한민국 유권자 3명 중 1명꼴이다. 얼추 양당 지지자와 무당층이 3대 3대 3인 구도다. 내가 별종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여야가 사활을 거는 총선이 이제 7개월 앞이다. 윤석열 정부가 국정 운영에 힘을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여소야대일 것이다. 뭐라도 해볼라치면 번번이 국회에서 발목이 잡힌다. 시행령 돌파 등 꼼수를 동원하지만, 원하는 만큼의 속도가 나지 않으니 답답할 것이다. “선수의 손발은 묶어놓은 채 어디 한번 뛰어봐 하는 행태였다”(김기현 대표)는 게 솔직한 심경일 거라 본다. 이번에도 과반 의석을 얻지 못한다면? 윤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은 불가피할 것이다.
민주당은 어떤가. 2021년 시장 보궐선거, 지난해 대선과 지방선거에 이어 내년 총선까지 진다면 4연속 패배다. 21대 총선 승리로 거머쥔 180석을 창과 방패 삼아 각종 내부 악재에도 꾸역꾸역 버텨왔지만, 제1당 자리마저 내어준다면 더 이상 기댈 곳은 없다. “여당이 다수당이 되면 법과 제도까지 통째로 뜯어고쳐질 것이고, 이 나라 시스템이 통째 무너질 것”(이재명 대표)이라는 말은 민주당 스스로에 하는 말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도 양당 모두 배짱이 두둑하다. 콘크리트 지지층을 더 단단히 하는 데만 몰두할 뿐, 30% 무당층을 향해서는 상투적 구애조차 않는다. 국민의힘 속내는 복잡하겠으나 적어도 윤 대통령은 무당층은 버리고 가자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당층이 가장 싫어할 ‘이념’을 화두로 올릴 리 없다. 한 개인의 이념은 어지간해서는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라고 하니, 누가 봐도 지지층 확장이나 무당층 포용 행보는 아니다.
이재명 대표의 단식이 구애를 하는 대상도 오직 지지층이다. 민주당 전체 지지자들도 아니고 ‘친명’ 강성지지자다. 민생 파괴, 민주주의 파괴를 단식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구속영장 청구를 앞두고 그들을 향해 보내는 구조신호 느낌이 훨씬 강하다. 무당층으로선 누굴 위한, 무엇을 위한 단식인지 공감이 쉽지 않다. 자고로 야당 지도자의 단식이라면 철옹성 같은 전두환 독재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YS의 단식,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자치제 결실로 이어진 DJ의 단식처럼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을 비장한 메시지가 있어야지 않겠는가.
나는 무당층이 거대 양당 체제의 한국 정치를 건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세력이라고 믿는다. 정치학자 러셀 J. 달톤은 무당파를 정치적 지식이나 참여가 적은 정치 무관심자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사안이나 이슈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 고관여 무당층, 혹은 인지적 무당층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2023년 대한민국에서 무당층은 철저히 찬밥이다. “우리도 좀 봐달라”는 간절한 호소에조차 귀를 닫는다. 대선에 비해 낮은 총선 투표율이 양당에 이런 인지적 무당층마저 배척해도 좋다는 비뚤어진 계산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이 말은 누가 이기든 무당층은 어느 쪽의 우산 아래에도 들어갈 수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국민은 정치와 거리를 둘 수 있어도, 정치는 국민을 버려서는 안 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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