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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베프' 만들어 줄게요"... '진짜 통합' 만든 벨기에 이민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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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지구를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유럽의 마을과 도시를 탐험하는 기획을 신은별 베를린 특파원이 한 달에 한 편씩 연재합니다.
고국을 떠나 다른 국가에 정착하려 할 때, 누구든 '더 나은 삶'을 꿈꿀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그 바람은 순탄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이민자의 고국이 경제·사회적으로 불안할수록, 원주민의 거부감도 커지기 때문이다. 같은 지역에서, 그러나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원주민과 이민자 사이엔 오해와 갈등도 자라난다. '이민자 통합'이 전 세계 곳곳의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는 이유다.
벨기에 소도시 메헬렌시(市)는 "숙제를 풀었다"고 감히 자부한다. 시 인구 8만8,614명 중 35.6%가 이민 배경을 가졌고, 출신 국가는 138곳에 달한다. 시가 속한 플랑드르 주정부 공식 언어인 네덜란드어를 포함, 사용 언어도 무려 80여 개다. 그럼에도 메헬렌은 유럽에서 '통합의 도시'로 불리고, 바트 소머스(59) 메헬렌 시장은 이민자 통합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영국 싱크탱크 '시장재단'이 선정한 '최고의 시장'으로 뽑혔다.
메헬렌시는 '단순하지만 특별한' 비결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한국일보가 현지를 찾아 그 비결을 살펴봤다.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20여㎞ 떨어져 있는 메헬렌. 이곳에 이민자가 본격 유입된 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벨기에가 도시 재건 및 경제 발전을 목표로 외국에서 노동력을 대거 받으면서부터다. 1960년대 초부터 모로코, 튀르키예 등에서 이민자가 들어왔지만, 이들과 어울리려는 원주민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1970년대 들어 벨기에 경제성장이 둔화하면서 원주민과 이민자 간 갈등이 커졌다. 사회·경제적으로 배제된 이민자가 범죄를 일으키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이민자=잠재적 위협'이라는 극우 담론도 몸집을 불렸다. 사회적 불안은 계속 확산했다. 메헬렌도 이런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더럽고 위험한 도시"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2001년 부임한 소머스 시장은 치안 질서부터 확립하기로 했다. "사회적 불안을 만드는 건 이민자가 아니라, 이민자에 대한 차별"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사회 구성원이 '안전하다'고 느껴야만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경찰관 수를 160명에서 260명으로 늘렸고, 메헬렌 내부와 진입로엔 200개 이상의 감시카메라를 달았다. 골목마다 가로등도 설치했다. 단순한 조치였으나, 효과가 있었다.
이와 동시에 강력한 통합 정책을 폈다. "이민자를 원주민의 친구·이웃으로 만들자"는 게 핵심이었다. 이민자와 원주민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경험을 쌓아야, 이민자가 이방인 정체성을 내려놓게 되고 각종 오해와 갈등도 싹트지 않으며, 그래야만 진정한 통합이 가능해진다고 본 것이다.
①소머스 시장은 학생들부터 '섞기로' 했다. 당시 메헬렌에는 이민자 학생이 많은, 이른바 '게토 학교'가 있었다. 원주민 학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네덜란드어를 못하고 △경제적 사정도 좋지 않은 이민자 학생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탓이다. 소머스 시장은 "게토 학교에 더 많은 투자를 할 테니, 아이들을 입학시켜 달라"며 원주민 학부모를 일일이 설득했다.
2019년 10월부터 플랑드르 주정부 부총리를 겸임하는 소머스 시장을 대신해 시정을 운영하는 알렉산드르 반데르스미센 시장 업무대행은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원주민 학부모들이 인종적·문화적 다양성하에서 아이를 키우는 게 긍정적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게토 학교는 해체됐다"고 회상했다.
원주민과 이민자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여름 캠프'도 운영했다. 반데르스미센 대행은 "서양 문화권에서는 여름방학 동안 아이들이 등산, 야영 등에 참여하는 게 일반적인데, 모로코 등에선 이런 문화가 생소하다"며 "이민자 학부모를 찾아다니며 '한번 해 보라'고 열심히 설득했다"고 말했다.
②메헬렌시는 원주민과 이민자를 일대일로 맺어주는 '버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각자의 성향, 선호를 파악해 적합한 짝을 찾아주는 것이다. 버디가 된 사람들에겐 규칙이 생긴다. 매주 최소한 한 번은 만나야 하고, 네덜란드어로 대화해야 한다. 이민자로서는 메헬렌에 쉽게 정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버디 프로그램이 원주민에게도 좋을까. 참여 경험이 있다는 주민 카린 데코스터는 망설임 없이 "그렇다"며 이렇게 말했다. "내 버디는 루마니아 출신 여성이었다. 나는 여행 가이드로 다른 문화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그에게 루마니아 이야기 듣는 것을 즐겼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점은 내게 정말 좋은 친구가 생겼다는 것이다."
③메헬렌시는 원주민과 이민자의 주거지도 섞었다. 이민자는 임대료가 낮은 사회주택에 사는 경우가 많은데, 시는 일부 사회주택에 경제적 여유가 있는 원주민이 입주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다. 대신 이민자와 함께 어울려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반데르스미센 대행은 "교사가 입주해 이민자 아이들에게 교육을 해 주는 식"이라고 소개했다. 이민자가 '2등 시민'으로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도록 사회주택 시설 관리엔 더욱 신경을 썼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덕분에 이곳에는 이민자끼리만 모여 사는 구역이 없다. 이민자가 도시 외곽으로 떠밀려 살지도 않는다. 메헬렌에서 식료품점 '모로코넛츠'를 운영하는 남성은 "여기는 모로코 출신이 많이 살지만 '모로코 마을'이 따로 없다. 모두가 메헬렌 주민으로 살아간다"고 설명했다.
메헬렌 구석구석에는 통합의 정신이 스며들어 있었다. 도서관에는 네덜란드어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위한 책들을 둔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었다. 교회 8곳 중 2곳은 아시리아 기독교인 등 교리가 다른 신도들을 위한 공간으로 양보됐다.
시에선 신규 이민자를 환영하는 축하 파티를 매년 연다. 데코스터는 "소머스 시장이 2016년 최고의 시장으로 뽑혔을 때 시청 앞 광장에서 축하 파티가 열렸는데, 술을 안 마시는 무슬림을 위해 각양각색의 차가 구비돼 있던 기억이 난다"며 웃었다. 작지만 섬세한 배려다.
원주민과 이민자는 모두 "어울려 산다는 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리아 출신 부모를 둔 피오나(16)는 "학교에서 매년 '다양성 데이'를 열어 자신의 정체성 등을 소개하는데, 이때 말고는 인종이나 고향 등을 생각하지 않는다"며 미소를 보였다. '이민자 차별이 없느냐'는 물음에도 그는 "전혀"라고 힘주어 답했다. 원주민 오다(20)는 "유럽에서 득세하는 극우주의가 메헬렌에선 큰 위세를 떨치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극우 담론은 이민자가 '약자'일 때 위력을 떨치는데, 여기선 모두가 동등한 힘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반데르스미센 대행은 "주민들 유전자(DNA)에 통합이 있다"고 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로 2015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유럽 전역에서 활개를 쳤던 때를 들었다. "그때 IS가 이슬람 청년들을 꼬드겨 시리아 등으로 데리고 가거나 공공장소 테러에 가담하게 했는데, 메헬렌에선 단 한 명의 이슬람 청년도 유혹되지 않았다. 인근 빌보르데 지역에서 28명이 시리아로 간 것과 대조적이다."
메헬렌표 통합 정책은 확산 중이다. 소머스 시장이 플랑드르 주정부 부총리를 겸임하며, 메헬렌의 정책을 확대 적용하고 있다. 플랑드르에 온 이민자는 40시간 동안 자원봉사를 하거나 원주민과 어울려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사회적 연결망을 형성하는 플랑드르 정책을 "특별하다"며 고평가했는데, 이는 메헬렌에 대한 칭찬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주도인 팔레르모에 속한 인구 1만 명의 소도시 카파치는 버디 프로그램을 배워갔다. 유럽연합(EU)도 이곳의 정책을 '모범'으로 평가한다.
다른 도시·국가에서도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반데르스미센 대행은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유의사항 몇 가지를 언급했다. 우선 ①이민 정책의 큰 틀은 중앙정부가 짜더라도, 세부 정책에선 작은 행정단위가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을 가져야 한다. "원주민과 이민자를 동네 주민으로 만드는 건 동네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단순한 원리다. 도시마다 다른 주민의 정책 수용도, 경제적 상황 등도 고려해야 한다. ②통합을 위한 '기적의 해결법'은 없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작은 노력을 꾸준히 반복해야 한다"는 말이다. 반데르스미센 대행은 "버디 프로그램만 해도 모두가 자신의 짝을 마음에 들어했던 게 아니다. 그때마다 포기했으면 지금의 성공은 없었을 것"이라며 웃었다. ③아울러 "누가 권력을 잡느냐에 이민자 통합 정책이 휘둘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저출생·고령화 해결을 위해 이민자를 대거 받으려는 한국에 건네는 뼈 있는 조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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