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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에 연필 200번 찔리고, 의자에 16시간 묶였다 숨졌는데… '살해' 아니라는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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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님 부끄럽지 않으세요?"
지난달 25일 오후 인천지법 제324호 법정. 열두 살 의붓아들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계모 이모(43)씨에게 재판부가 살인죄가 아닌 치사죄를 적용해 징역 17년을 선고하자 방청석에서 고성이 쏟아졌다. 아동학대·방임 혐의로 기소된 친부 이모(40)씨에게 징역 3년이 내려지자 소란은 더 커졌다. 법정을 가득 메운 대한아동방지협회 회원들은 “(온몸에 멍이 든 채 숨진) 아이의 몸이 증거”라고 소리쳤다. 울음을 터트린 방청객도 있었다. 판사가 일부 방청객에게 퇴장을 명령하고서야 겨우 분위기가 가라 앉았다. 사망 피해자인 초등학교 5학년 A(12)군의 친모(34)는 재판이 끝난 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살인죄가 인정되느냐”며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오열했다.
온몸에 멍이 든 채 숨진 초등생 학대사망 사건은 검경 수사로 계모 이씨와 친부 이씨의 잔혹한 학대 행위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2020년 국민적 분노를 샀던 16개월 영아 ‘정인이 사건’과 닮아서 더 그랬다. 계모 이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한 검찰 역시 지난 7월 14일 결심 공판에서도 “범행 수법이 잔혹하고 사실관계가 ‘정인이 사건’과 유사하다”며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두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정인이를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양모 장모(37)씨는 살인죄로 대법원에서 징역 35년이 확정된 반면 A군을 사망케 한 계모에겐 치사죄만 적용된 것이다. A군 사건은 정인이 사건과 무엇이 달랐던 걸까.
9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공소사실에서 계모 이씨의 구체적 살해 행위를 ①2월 4일 오후 알루미늄 선반 받침용 봉으로 피해자 온몸을 수십 차례 때린 행위 ②2월 5일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 25분쯤까지 16시간 동안 피해자를 책상 의자에 수건 등으로 묶어둔 행위 ③2월 6일 오전 9시 25분쯤 선반 받침용 봉과 플라스틱 옷걸이로 피해자의 온몸을 수십 차례 때린 행위 ④2월 6일 오후 1~3시쯤 피해자를 의자에 묶어둔 행위로 구분했다.
장기간 학대와 방임으로 영양 상태가 매우 불량하고 신체 전반 기능이 쇠약해진 A군이 2월 4~6일 사흘간의 학대 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숨졌다는 판단이다. 검찰은 법정에서 계모 이씨에게 미필적으로나마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의붓아들이 죽더라도 상관 없다는 마음으로 학대해 숨졌고, 학대 행위 강도를 높여 심하게 때릴 경우 사망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는 것이다.
A군은 2월 7일 오후 1시에서 1시 12분 사이 인천 남동구 논현동 아파트 자택에서 숨질 당시 키 148㎝에 몸무게 29.5㎏으로 심각한 저체중(또래 평균 45㎏)이었다. 성장기임에도 불구하고 2021년 12월 20일 38㎏이었던 몸무게가 늘기는커녕 1년 2개월 만에 8.5㎏이 빠진 것인데, 학대ㆍ방임이 원인이었다. 사망 당시 두 다리의 상처만 232개에 이르는 등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계모 이씨는 지난해 3월 9일 A군이 돈을 훔쳤다는 이유로 화가 나 드럼스틱으로 종아리를 10회 때린 것을 시작으로 올해 2월까지 연필로 허벅지 등을 200회 찌르는 등 총 30차례에 걸쳐 신체적으로 학대했다. 그는 지난해 8월 25일 A군에게 “이 XX새끼야”라고 욕설을 하거나 학교에 보내지 않는 등 2021년 4월 6일부터 올해 2월 7일까지 20차례 정서적으로도 학대했다.
계모 이씨는 1월 말 A군이 상처를 제때 치료받지 못해 피부에 괴사가 일어나고 입술과 입 안에 화상을 입어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사망 전날부터 통증으로 제대로 걷거나 잠을 자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만 봤다. 홈 스쿨링을 시킨다는 명목으로 학교에 보내지 않고 대신 성경 필사 등을 하도록 강요했다. 학대 이유는 사소했다. 남편이 약속한 시간에 집에 오지 않았다고 A군에게 욕설을 하고, 오전 6시에 일어나 성경을 베껴 쓰는 것을 제대로 안 했다고 남편을 시켜 때렸다. 방에 설치한 홈 캠을 쳐다본다고 폭언하고 늦잠을 자고 웃었다고 벌을 세웠다. 지난해 4월 유산을 하자 그 책임을 A군에게 돌리기도 했다.
상습적 학대 행위로 A군은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정서적으로도 피폐해져 갔다. A군은 지난해 12월 28일 일기에 “나는 죽어야 된다. 내가 있다면 모든 게 불행해진다. 치매 걸려서 죽고 싶다”고 쓸 정도로 정상적 상태가 아니었다. 계모 이씨는 A군에게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가 있다며 정신과 진료도 받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A군의 4학년 담임교사는 A군의 학업 태도가 우수했고 ADHD 같은 행동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검찰은 계모 이씨가 지난해 4월 25일 유산을 하고 같은 해 8월 재차 임신을 하는 과정에서 A군에 대한 미움이 커졌고 결국 살해로 이어졌다고 봤다.
반면 법원 판단은 달랐다. 남편과 사이에 두 딸을 두고 있고 당시 출산 예정일을 불과 4개월 앞둔 상황에서 오랜 기간 친 자녀를 돌보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감수하면서 피해자를 살해할 만큼 미워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5월 구치소 수감 중 출산을 한 계모 이씨는 그동안 재판에 아이를 데리고 출석해왔다.
재판부는 “피해자 양육으로 인한 스트레스, 불만과 유산으로 인한 미움이 범행 동기가 될 수 있다고 보기에는 부족함이 있다”며 “피고인이 가족 생활의 기반이 무너지는 결과를 감내하면서까지 살인을 감행했다고 볼 수 있으려면 그만큼 강렬한 범행 유발 동기가 존재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계모 이씨가 남편의 부모인 A군의 조부모에게 양육을 맡기거나 A군을 필리핀으로 유학을 보내는 것을 검토한 점도 고려됐다. 그가 대안이 있는 상황에서 곧바로 ‘살인’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통해 스트레스와 불만에서 벗어나려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법원은 계모 이씨에게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는 검찰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부검 감정서 등에 의하면 피해자에게서 외부 출혈이나 골절, 내부 장기 손상 등 사망 원인으로 볼만한 손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사인과 상해 정도, 범행 도구, 공격 부위와 반복성 등도 살해의 고의를 미뤄 판단하기에 부족하다”고 했다. 계모 이씨가 A군에게 직접적 폭력을 행사한 최종 시점과 사망한 사이에 만 하루 이상의 시차가 있고 선반 받침용 봉 등이 사망을 초래할 수 있는 도구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피해자 사망 전날 지인을 집으로 초대하고 피해자에게 저녁식사를 챙겨준 점, 남편에게 피해자를 심하게 폭행했다고 말을 한 점, 홈 캠을 떼어내 버려 뒀을 뿐 학대 정황이 담긴 영상, 피해자 일기장 등을 그대로 갖고 있었던 점 등 범행 전후 사정들이 살해 의도가 없었다는 피고인 주장에 부합한다”며 “피해자가 사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나 위험성을 인식하거나 예견할 수 있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1심 법원은 친부 이씨에 대해서도 “피고인에게 피해자 사망에 따른 형사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만 방임 행위와 사망 사이의 인과 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죄책이 상당히 무겁다”면서 "학대 행위의 횟수가 그리 많다고 볼 수 없고 정도 역시 심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검찰 구형량(징역 10년)에 훨씬 못 미치는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검찰과 계모 이씨, 친부 이씨가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사건은 서울고법으로 넘어 갔다. 앞서 검찰은 선고 닷새 만인 지난달 30일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하면서 “살해 고의가 충분히 인정되는데도 학대치사죄로 판단한 1심 선고는 사실 오인과 법리 오해가 있고 선고된 형량이 지나치게 가볍다”고 항소 이유를 밝혔다. 계모와 친부도 각각 지난달 31일과 28일 항소함에 따라 서울고법에서 2심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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