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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선구적 박애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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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 같은 갑부들이 벌이는 자선 기부 등 공익 활동을 뭉뚱그려 ‘박애자본주의’라 한다. 승자 독식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그 가치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이들도 있고, 독점적 이윤을 영속화·정당화하기 위한 체제의 한 방편일 뿐이라고 냉소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종교적 기반을 탈피한 박애자본주의는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시작됐다. 미국 뉴욕주에서 자선조직협회(COS)가 설립된 1877년을 기점으로 치기도 한다. 그 배경에는 남북전쟁 종전(1865)과 대륙횡단철도 개통(1869) 등에 힘입은 북동부의 급격한 산업화와 대규모 인구 유입에 따른 심화한 양극화가 있었다. 한 성공회 목사가 주도하고 동부 사회 엘리트 계층이 뭉쳐 출범시킨 COS는 빈민 구호와 의료 서비스 등에 몰두했고, 20세기 들어선 주로 가족 단위 복지사업에 초점을 맞췄다. 카네기재단(1910)과 록펠러재단(1913) 등이 출범한 것도 20세기 초였다.
20세기 선구적 박애주의자 마거릿 올리비아 슬로컴 세이지(Margaret Olivia Slocum Sage 1828.8.28~1918.11.4)가 기금 1,000만 달러(당시 기준)로 ‘러셀 세이지 사회개혁 재단’을 설립한 것은 카네기보다 앞선 1907년이었다. 신학대를 졸업하고 사회봉사 활동가 겸 여학교 교사로 일하던 마거릿은 만 41세 때인 1869년, 거물 금융가 겸 철도 재벌이던 8년 연상의 러셀 세이지의 두 번째 아내가 됐고 1906년 사별한 뒤 6,300만~7,500만 달러의 유산을 받았다.
인색하기로 유명했다는 남편과 산 만 37년 동안 22만 달러를 기부하는 데 그쳤던 그는 남편 사후 자신이 숨질 때까지 12년간 무려 4,500만 달러를 교육과 복지사업에 썼다. 특히 여성 교육을 중시해 러셀 세이지 칼리지와 바사르 여자대학을 잇달아 설립했다. 자녀가 없었던 그는 남은 재산도 전액 사회사업에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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