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네임 '피커딜리'의 우산 독살 테러

입력
2023.09.07 04:30
26면
구독

9.7 프란체스코 굴리노

1978년 게오르기 마르코프 독살 테러에 사용된 우산 복제품. 워싱턴DC 국제스파이박물관

1978년 게오르기 마르코프 독살 테러에 사용된 우산 복제품. 워싱턴DC 국제스파이박물관

1978년 9월 7일 아침, 영국 런던 워털루 다리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만 49세 남성 게오르기 마르코프(Georgi Markov, 1929~1978)가 의식을 잃고 갑자기 쓰러져 4일 뒤 병원에서 숨졌다. 불가리아 출신 반체제 작가로 69년 영국으로 망명한 그는 BBC 월드뉴스와 자유라디오유럽(FRE) 방송 등을 통해 소비에트와 불가리아 체제 비평가로 활동하던 중이었다.

그날 그는 당시 직장이던 BBC 사옥으로 출근하던 길이었다. 그는 붐비는 정류장에서 낯선 남자의 우산대에 허벅지를 살짝 찔렸다. 경찰은 그의 몸에서 ‘리신(Ricin)’ 성분의 독극물을 검출했지만 폐쇄회로(CC)TV도 없던 때여서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했다.

영국 경찰은 동유럽 블록이 해체된 1993년에야 불가리아 비밀문건을 통해 ‘피커딜리’라는 암호명의 불가리아 첩보원 프란체스코 굴리노(Francesco Gullino, 1945~2021)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어려서 고아가 된 굴리노는 1970년 밀수 혐의로 불가리아 당국에 체포된 뒤 비밀 첩보원 훈련을 받고 냉전기 유럽서 암약한 인물.

체제 붕괴 직전 불가리아 정보당국이 민감한 비밀문건을 모두 소각한 탓에 그를 ‘우산 독살사건’의 범인으로 확증할 만한 증거가 부족했다. 다만 그의 위조 여권 출입국 기록 등 정황 증거는 모두 그를 가리켰다. 사건 직후 그는 “국가 안보와 공안질서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 훈장까지 탔다. 1993년 그는 당시 거주지였던 덴마크 경찰에 연행돼 영국 경찰과의 합동조사를 받았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를 면했고, 이후 유럽 여러 나라를 떠돌며 은둔하듯 살다 2021년 오스트리아의 한 마을에서 자연사했다.
2023년 저 사건을 다룬 덴마크의 한 방송 다큐멘터리는 그가 냉전기 비밀정보를 영국에 제공하는 조건으로 모종의 거래를 한 덕에 기소를 면했을지 모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최윤필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