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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집 푸는 것보다 추모가 중요"... 자녀 손 잡고 서이초 향한 학부모들

입력
2023.09.04 15:36
수정
2023.09.0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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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극단적 선택 서이초 교사 49재
학부모들, 체험학습 신청하고 추모
학교 주변엔 동료 교사들 근조화환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49재를 맞은 4일 오전 학교에서 추모객들이 헌화를 위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연합뉴스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49재를 맞은 4일 오전 학교에서 추모객들이 헌화를 위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연합뉴스

"이유도 모르고 학교에 빠지기보다 이런 자리에 함께 하는 것이 아이에게도 의미 있는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4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만난 12년 차 초등교사 신경민(45)씨는 일곱 살 난 딸의 손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신씨는 전날 자녀의 학교에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고 경기 용인에서 1시간을 이동해 이곳에 왔다. 그는 "7번 집회에 나갔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면서 "한 아이의 학부모로서도 행복한 교실을 만드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이초에서 근무하던 교사가 목숨을 끊은 지 49일. 그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말끔히 정리된 학교 담벼락엔 이른 아침부터 전국 각지에서 배달된 근조화환이 새로이 늘어섰다. 숨진 교사가 담임을 맡은 교실 앞에 추모공간이 마련되면서, 오전 9시부터 20m 넘는 추모 대기줄이 만들어졌다. 전국초등교사노조가 준비한 국화 4,700송이는 3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절반 가까이 헌화됐다. 학생들이 헌화할 수 있게 흰색 카네이션 500송이도 준비됐다.

이날 서이초에는 특히 자녀 손을 잡고 온 학부모가 많이 눈에 띄었다.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교권을 회복해 달라며 거리로 나선 교사들의 '공교육 멈춤의 날' 집단행동에 동참하려는 발걸음이었다. 4학년 딸과 함께 학교를 찾아 묵념한 한 학부모는 "단축 수업이나 합반 수업을 한다고 해 체험학습을 신청했는데 문제집 몇 장 푸느니 왜 그렇게 됐는지, 과정을 설명해 주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추모식 시간인 오후 3시가 되자 학교엔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날 학교 강당에서 열린 추모식에는 유족과 동료 교사, 고인의 학교 선·후배, 시민 등 150명이 참석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임태희 경기도교육감도 자리를 지켰다.

생전 교사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이 담긴 추모 영상이 상영되자 강당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나왔다. 고인의 대학 후배는 "제가 기억하는 언니는 힘든 내색 없이 강하고 책임감 넘치는 '등대' 같은 선배였는데, 그 또한 어리고 여린 청년 중 하나였다"며 "아이들을 사랑한 고인의 마음을 이어받아 모든 학생이 선생님의 사랑을 느끼며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인의 외삼촌은 "이 학교가 조카의 첫 부임지이자 마지막 부임지가 됐지만 다시는 이런 비극이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이 장관도 "무너진 교권에 대한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외면해온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겠다"고 반성했다.

추모식 후에도 애도 행렬은 이어졌다. 어린 학생들도 학교를 찾아 스스로 세상을 등진 선생님을 위로했다. 서울 은평구에서 온 박모(10)양은 "학교가 하루 쉰다고 해서 엄마와 같이 추모하러 왔다"며 "선생님이 억울하게 돌아가신 것 같아 슬프다"고 했다. 추모공간 한편에 마련된 '포스트잇 벽'에도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그곳에선 여기 생각하지 마시고 편히 마음 놓으세요’ ‘선생님들도 지켜주세요’라고 쓰인 메모지들이 즐비했다.

교육부의 만류에도 '우회 파업'에 나선 동료 교사들도 함께 했다. 고인과 같은 서울교대를 졸업한 문성환(49)씨는 "교사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아픔을 두고 정부가 되레 엄포를 놓으니 오히려 파업에 함께 해야겠다는 여론이 들끓었다"고 말했다. 8년 차 초등교사 A(30)씨는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들이 선생님의 죽음을 추모하게 된 현실이 비참하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숨진 교사의 모교인 서초구 서울교대에서는 오후 7시부터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교수 약 30명을 포함해 500명 넘는 애도객들이 모여 고인의 가는 길을 배웅했다. 마이크를 잡은 재학생 박준휘씨는 "교사와 학생 인권이 함께 존중받는 사회에서 사랑으로 아이들을 보살피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채성 총장도 "교육자를 중시하는 건전한 교육문화가 탄탄한 나라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는 이달 중 예정된 학교 축제를 취소하고 추모주간을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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