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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안 망하나, 사람들은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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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치열했던 지난 대선 기간에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나라 안 망한다”는 일종의 긍정과 위로의 말을 들었다. 지도자 한 명에게 좌우되기엔 한국의 그릇은 이미 커졌고, 과거 부정적 영향을 줬던 대통령들을 겪고도 굳건했다는 뜻이었다.
그 자리에서는 언뜻 수긍했으나, 집에 돌아오면서 ‘그런 말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건 우리가 ‘중산층’이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했다. 중산층·정규직에겐 대통령의 영향이라고 해봤자 ‘세금을 더 내느냐, 덜 내느냐’ 정도겠다. 한 가지 더하면 부동산 정책 정도가 아닐까. 반면 취약계층이나 비정규직에게는 대통령의 영향이 때로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는 문제가 된다. 월세가 부족하고, 치료비가 없고, 그럴듯한 직장을 잡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이들에게 ‘망하지 않는 나라’란 허상일 뿐이다.
제임스 길리건의 저서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위험한가’에는 미국에서 보수정권이 들어섰을 때 자살률과 살인율이 크게 높아지는 현상을 통찰했다. 불평등, 실업, 권위주의 등이 불안과 폭력, 수치심을 불러일으켜서다. 물론 한국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볼 수는 없고, 그런 연구를 본 적도 없다. 윤석열 정부는 부유층의 세금을 깎아주고 건강보험 적용 대상은 축소하는 정책 등을 펴고 있지만, 한편으로 기초생활수급자의 생계급여를 늘리는 결단도 내렸다.
그런데 ‘망하지 않는 나라’에서 죽는 사람은 취약계층만은 아니다. 이태원 참사, 오송 참사의 희생자들은 어떤가. 더 거슬러 올라가 천안함 폭침, 세월호 참사, 용산 참사를 생각해 보자. 개별 사건의 인과 관계는 다르고 복잡한 요인들이 작용하지만, 상당수 참사는 집권 세력이 안정과 협의·설득보다 대내외적으로 힘에 의한 우위를 우선시할 때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같다.
군 장병의 목숨은 언제 위험해지는가. 통일부의 남북교류 기능을 없애고 대결을 우선시하는 정책은 그 정책 자체의 찬반을 떠나, 분명 군 장병이 목숨을 잃을 가능성에 한 발짝 다가가는 것이다. 노조와의 대립도 마찬가지다. 이미 양회동씨의 분신 사망을 불렀다. 용산 참사를 돌이켜보자. 경찰이 눈앞의 철거민을 강제진압하느냐 아니냐는 그 경찰이 아니라, 정권이 결정한다. 불법 여부를 따지고 강경진압을 지지하는 목소리의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뜻이 아니다. 어떠할 때, 국민이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높아지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힘의 우위’가 무서운 점은 공직사회 내부를 잠식해, 참사를 막을 ‘책임감’까지 와해시켜버린다는 점이다. 도로 한복판에서 159명이 사망해도 안전 담당 장관은 건재하고, 4만 명의 스카우트 청소년들이 폭염과 더러운 화장실 환경에 방치됐지만 담당 장관은 국회 출석을 거부하고 도망가면 그만이다. 인명 수색 중 사망한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건에서도 옷 색깔을 지적하며 홍보에만 신경 쓴 사단장은 책임을 지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손’이 보호하고 있다. 결정권 없고 눈치만 보는 실무 관리자들에게 ‘국민의 안전’이 맡겨져 있으니, 참사가 거듭될 수밖에 없다.
‘힘의 우위’를 추앙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인권과 거리를 둔다. 현 정부는 출범 1년 3개월이 넘도록 ‘제4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2023∼2027년)을 수립하지 않았다. 의아한 대목은 국민의 인권과 안전을 도외시하면서 추구하는 대의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에서 언급한 민주주의·인권·진보로 위장한 ‘공산전체주의 세력’의 퇴치일까. 그런데 ‘그들’이 도대체 누군지조차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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