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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고진, 반란 61일 만에 비행기 추락사… 푸틴 '피의 보복' 나섰나

입력
2023.08.24 20: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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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부 "전용기 추락, 프리고진 숨졌다"
사고 경위 불분명... '푸틴 배후' 암살 가능성
'두 번째 비행기 존재' '자작극' 음모론 횡행
"프리고진 제거는 '불충성은 죽음' 메시지"

23일 의문의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 민간용병기업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지난 5월 확인되지 않은 장소에서 러시아 군대를 비판하는 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콘코드 제공, AFP 연합뉴스

23일 의문의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 민간용병기업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지난 5월 확인되지 않은 장소에서 러시아 군대를 비판하는 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콘코드 제공, AFP 연합뉴스

러시아 민간용병기업 바그너그룹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3일(현지시간) 의문의 비행기 추락 사고로 숨졌다고 러시아 연방항공운송국이 밝혔다. 해당 항공기 탑승객 10명 전원이 모두 사망했고, 이들 중 프리고진도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 6월 23일 바그너 무장반란을 일으킨 지 61일 만에 비극적 죽음을 맞은 셈이다.

정확한 사고 경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배후에 있을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그동안 푸틴 대통령의 정적이나 배신자 상당수가 의문사했던 전례에 비춰, 이번에도 '피의 보복'이 현실화했다는 얘기다. 다만 프리고진 시신 수습 소식이 아직 전해지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하면, 사망을 단정하긴 이르다는 시각도 있다.

"순식간에 곤두박질"... 프리고진 전용기 돌연 추락

24일 러시아 언론 타스통신, 영국 로이터통신 등을 종합하면, 프리고진과 바그너 소속인 일행 등은 전날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국방부와 회의를 한 뒤, 인근 셰레메티예보 공항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행 '엠브라에르 레거시 600 제트기'에 탑승했다. 이 항공기는 프리고진의 개인 전용기로, 무장반란 종료 후 그가 러시아 동맹국인 벨라루스로 망명했을 때에도 이용됐다

24일 러시아 트베리주 쿠젠키노 지역으로 추락한 비행기 잔해 주변에서 군 관계자 등이 사고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이 비행기에는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탑승해 있었다고 러시아 연방항공운송국이 전날 밝혔다. 트베리=AP 연합뉴스

24일 러시아 트베리주 쿠젠키노 지역으로 추락한 비행기 잔해 주변에서 군 관계자 등이 사고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이 비행기에는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탑승해 있었다고 러시아 연방항공운송국이 전날 밝혔다. 트베리=AP 연합뉴스

모스크바 시간으로 23일 오후 6시 59분 이륙한 비행기는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중간쯤에 위치한 트베리주(州) 쿠젠키노 지역에서 돌연 레이더 신호가 끊겼다. 이륙 15분 만이었다. 뒤이어 추락 소식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텔레그램 등을 통해 먼저 확산했고, 이후시아 정부가 "승무원 3명 등 탑승객 10명이 모두 사망했다" "프리고진 이름이 탑승객 명단에 있다" "프리고진의 해당 비행기 탑승을 확인했다"고 연달아 발표했다.

친바그너 "러시아군이 쏜 미사일 맞아 격추"

추락 장면이 담긴 영상은 비행기가 머리를 땅으로 향한 채 빠른 속도로 곤두박질치는 모습을 담고 있다. 항공기 경로 추적 웹사이트 '플라이트레이더24'의 이사 이언 페체니크는 항공기가 아무 이상 징후도 보이지 않다가 약 30초 만에 순항고도인 8.5㎞ 상공에서 2.4㎞를 내리꽂은 사실을 짚으면서 "무슨 일이 일어났든 빠르게 발생했다"고 말했다. 땅에 떨어진 뒤 비행기는 전소했다.

문제는 비행기 추락 경위가 의문투성이라는 점이다. 일부 러시아 매체는 익명 소식통과 친(親)바그너 커뮤니티를 인용해 "프리고진의 전용기가 러시아군이 쏜 지대공 미사일에 맞아 격추됐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당국은 사고 경위 확인 없이 특별위원회를 꾸려 사고 경위를 면밀히 조사하겠다는 입장만 밝혔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후 서방 경제제재 탓에 러시아가 항공기 부품을 제대로 조달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기체 결함에 따른 사고 가능성도 있다.

21일 공개된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불상의 장소에서 카메라 앞에 서 있는 모습. "바그너그룹이 아프리카를 더 자유롭게 만든다"고 발언한 점에 비춰, 아프리카 내에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23일 사망 소식이 발표되기 전 확인된 마지막 모습이다. AP 연합뉴스

21일 공개된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불상의 장소에서 카메라 앞에 서 있는 모습. "바그너그룹이 아프리카를 더 자유롭게 만든다"고 발언한 점에 비춰, 아프리카 내에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23일 사망 소식이 발표되기 전 확인된 마지막 모습이다. AP 연합뉴스


진짜 죽었나... "프리고진 제거, 푸틴 권력 공고화"

러시아 정부의 공식 확인에도 불구, 프리고진의 죽음을 둘러싼 음모론은 확산하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비행기 2대가 잇따라 이륙했는데 프리고진은 두 번째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 "비행기 추락 배후에 미국이 있다" "프리고진의 자작극이다" 등 온갖 추측과 미확인 정보가 난무하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프리고진의 생존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는 상황이다. 러시아 언론 '러시아24'가 "추락 현장에서 8명의 시신이 발견됐다"고 전한 사실도 미심쩍은 대목이다. 탑승객 10명보다 2명이 적기 때문이다. 다만 영국 텔레그래프는 "프리고진 시신이 영안실로 옮겨졌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프리고진 사망이 사실이라면, 푸틴 대통령에겐 이득이라는 분석이 많다. 특히 무장반란으로 크렘린궁을 사면초가에 몰아넣었던 프리고진을 살려둔 것 자체가 굴욕이었던 푸틴 대통령으로선 체면을 어느 정도 회복한 셈이 된다. 바그너그룹 장악력도 높일 수 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프리고진 제거는 푸틴 대통령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러시아 엘리트들에게 '조심하라, 불충성은 죽음이다'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X(옛 트위터)에 적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도 "프리고진의 몰락으로 푸틴의 권력이 공고해졌다"고 전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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