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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박원순 사건처럼... 또 '실체적 진실' 외면하는 경찰

입력
2023.08.24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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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1학년 6반 교실 외벽에 설치된 추모공간을 찾은 시민이 고인이 된 교사를 추모하고 있다. 뉴스1

지난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1학년 6반 교실 외벽에 설치된 추모공간을 찾은 시민이 고인이 된 교사를 추모하고 있다. 뉴스1

이 사건, 아무리 봐도 3년 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과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다.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의 경찰 수사가 바로 그렇다. 경찰이 "범죄 혐의점이 없다"는 이유로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지 못하면서, 이번에도 스스로를 사면초가에 빠뜨렸다. 눈덩이처럼 온갖 소문이 난무하는 이 상황. 경찰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3년 전 박 전 시장 사건을 돌이켜 보자. 수도 서울 시장이자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였던 정치인의 범죄 의혹과 연이은 사망에 국민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유사 사건의 재발 방지와 피해자의 명예회복(당시 박 전 시장 일부 지지자들은 피해자의 고소 동기를 의심했다)을 위해서라도 실체적 진실 규명이 필요했지만, 경찰은 성폭력 의혹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 "피의자 사망으로 인해 공소권이 사라졌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다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경찰은 전담수사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며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휴대폰 포렌식 등에 실패하면서 5개월간의 수사는 성과 없이 종료됐다. 온라인상 2차 가해자들만 대거 검찰에 송치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말았다. 박 전 시장 관련 의혹은 결국 국가인권위원회가 직권조사에 나서며 일부 실체가 규명됐다. 인권위 조사 결과가 나온 건 2021년 1월. 박 전 시장 사망 후 반년이 지나서였다. 만시지탄이다.

이번에도 경찰은 "고인의 사망 동기와 관련한 범죄 혐의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중이다. 현행법상 '학부모 갑질'을 의율할 법조항이 없다는 것이다. 경찰 말도 일리는 있다. 학부모가 심야시간에 교사에게 전화를 걸거나 문자메시지를 남겨도 형사처벌 대상이 되진 않는다. 한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는 "학부모에게 형법상 공무집행방해나 업무방해를 적용하는 것도 폭행이나 협박 수준은 돼야 가능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진실의 실체에 가장 신속하고 정확하게 접근할 수 있는 수사기관이 이런 노력을 포기한 것엔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경찰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사이, 해당 교사의 비극적 죽음을 두고 각종 의혹들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 일부 학부모가 현직 경찰관으로 알려지면서 그에 대한 신상 캐기와 경찰의 의도적 사건 은폐 가능성까지 언급되는 상황이다. 허무맹랑한 음모론도 문제지만, 경찰이 신속한 수사를 통해 교사 사망 경위를 명쾌하게 밝혔다면 이런 혼란도 오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경찰청 홈페이지에 게시된 경찰헌장을 찾아봤다. "우리는, 정의의 이름으로 진실을 추구하는 의로운 경찰이다." 경찰은 범법자를 잡는 수사기관이기도 하지만, 억울한 이(그가 죽은 사람이라 할지라도)가 뒤집어쓴 누명과 세상으로부터 받는 오해를 해소해 줘야 할 책임도 동시에 가지는 '인권의 보루'이기도 하다.

교사의 유족, 전국의 교사들, 그리고 국민 입장에서 이번 사건의 본질은 "왜 20대 초반의 앞길 창창한 교사가 그런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찾는 일이다. 국민이 경찰에게 바라는 기대와, 경찰이 하려는 일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은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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