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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2명이 모자 20개를 쓰면… '꿈' 향해 달려가는 '땀'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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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한 달에 1만 원만 투자하면 수백억 원대 제작비를 들인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를 마음껏 볼 수 있는 세상이다. 공연은 그에 비하면 작품도 초라하고 시간을 내서 공연장까지 이동해야 하며,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맘대로 볼 수도 없다. 이런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공연이 다양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이 쏟아지는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많은 수고를 들여야 하지만 그 노력의 보상으로 공연은 어떤 영상물도 대체할 수 없는 재미와 매력을 주기 때문이다. 이른바 '라이브성(Liveness)'이라 부르는 무대에서 배우와 관객의 살아 있는 교감은 애써 공연장을 찾게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뮤지컬 '구텐버그'는 공연의 라이브성을 극대화해 보여주는 작품이다.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많이 드는 뮤지컬은 본 공연을 올리기 전 투자자를 찾고 작품의 완성도를 확인하기 위한 쇼케이스를 한다. 이 쇼케이스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본 공연을 기대해도 좋다. 수많은 쇼케이스가 펼쳐지지만 실제 공연으로 이어지는 작품은 많지 않다. 신인 창작자의 작품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뮤지컬 ‘구텐버그’는 신인 창작자인 더그와 버드가 제작자를 찾기 위해 올리는 ‘구텐버그’의 쇼케이스를 극으로 꾸몄다. 관객들은 더그와 버드가 발표하는 쇼케이스장에 온 손님으로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물론 그들이 어떤 생각으로 이러한 장면을 만들었는지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여 쇼케이스 발표를 듣게 된다.
쇼케이스 ‘구텐버그’는 서양에서 최초로 활자 기술을 개발한 구텐버그(구텐베르크)를 소재로 한다. 와인 갤러리를 운영하던 구텐버그는 사람들이 지식을 쌓지 못하는 이유는 글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책을 널리 보급하려고 한다. 그는 와인 압축기를 응용해 활판인쇄기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문자를 독점하려는 수도사(지식인)의 방해로 위기를 맞게 된다. ‘구텐버그’는 꿈에 대한 뮤지컬이다. 활자를 널리 공급하고픈 구텐버그의 꿈이기도 하고, 브로드웨이에 뮤지컬을 올리고 싶은 신인 창작자 더그와 버드의 꿈이기도 하다. 이 꿈은 작품을 보는 관객들의 꿈으로 확장된다.
뮤지컬 ‘구텐버그’는 뮤지컬에 대한 뮤지컬 즉 메타 뮤지컬 형식을 취한다. 더그와 버드는 쇼케이스 ‘구텐버그’를 각 장으로 나누어 설명하며 각 장에서 어떤 일들이 이루어지고 어떤 의도로 썼는지를 설명한다. 극 초반 마을 사람들이 등장하며 극의 배경과 주인공을 소개하는 인트로 장면, 이야기를 멈추고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쇼 형식의 ‘쇼 스타퍼’ 그리고 1막 마지막 즈음에 등장인물 전체가 화려한 군무를 추며 웅장한 노래를 부르는 ‘프로덕션 넘버’ 등 작품을 통해 뮤지컬의 클리셰 같은 전개 방식을 소개한다. 뮤지컬의 제작 과정을 실례를 통해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엇보다도 ‘구텐버그’의 매력은 두 배우가 혼신을 다해 펼치는 일인 다역 연기에 있다. 이 작품은 창작자인 더그와 버드 두 명의 이인극으로 꾸며진다. 더그와 버드는 작품에 등장하는 구텐버그부터 그의 조수이자 연인이 되는 헬베티카, 활자 인쇄기 제작을 방해하려는 수도사, 수도사의 학대를 받는 젊은 수도사, 고깃집 주인, 꽃 파는 여인 등 마을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극중 인물은 아니지만 쇼의 화려함을 주기 위해 등장하는 코러스까지 모두 더그와 버드가 맡아서 연기한다. 이들의 무한 변신을 돕는 것은 모자다. 역할이 적힌 수십 개의 모자를 정신없이 바꿔 써 가며 극을 이끌어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퍼포먼스가 된다.
온전히 두 사람만이 100분 동안 수십 개의 모자를 찾아 들고 바꿔 쓰며 극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모자를 찾지 못하거나, 시간의 공백이 생기는 실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보통은 이러한 실수가 작품의 결점이 될 수 있지만 ‘구텐버그’에서는 실수마저도 극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재미의 요소가 된다.
이 작품의 마지막 노래는 ‘꿈꿔요’다. 더그와 버드가 ‘꿈꿔요~’라고 노래하면 관객이 ‘모두 함께’라고 호응해 준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두 배우의 겉옷이 땀에 흥건히 젖는다. 사람들에게 글을 선물하겠다고 노력하는 구텐버그와 투자사를 찾기 위해 온몸을 던져 연기하는 더그와 버드, 꿈을 향해 매진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기분 좋은 일이다. 공연은 10월 22일까지 플러스시어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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