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보다 신을 받든 주 대법관

입력
2023.08.22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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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 로이 무어

미국 앨라배마주 대법관 직에서 두 차례나 불명예 퇴진한 미국 초강경 기독교 보수 우파 정치인 로이 무어. 위키피디아

미국 앨라배마주 대법관 직에서 두 차례나 불명예 퇴진한 미국 초강경 기독교 보수 우파 정치인 로이 무어. 위키피디아

2003년 8월 22일 미국 앨라배마 주 대법원장 로이 무어(Roy Moore, 1947~)가 해고됐다. 그가 법원 로비에 설치한 2.3톤 화강암 십계명 기념비가 화근이었다.

순회법원 판사 시절부터 십계명 명판을 자기 재판정에 걸어 논란을 일으키던 그는 2000년 대법관이 되자 독단적으로 저 기념비를 주문 제작했다. 이듬해 기념비 제막식에서 그는 “나라와 우리의 법을 세우신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외침이 땅 전체에 퍼졌다. 오늘이 우리 국민에게 법의 도덕적 기초가 회복되고 이 땅이 하나님의 지혜로 돌아가는 날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미국 시민자유연맹(ACLU) 지부 등이 소송을 걸었고 2002년 11월 연방지방법원은 기념비가 수정헌법 1조(종교 표현의 자유) 위반이라며 이듬해 8월 20일까지 철거하도록 판결했다. 그는 불복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양심과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고 “법과 국가의 기반인 하나님을 결코 부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주 사법윤리위원회는 그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사실상 해임이었다.

무어는 2012년 선거로 다시 주 대법관이 됐다. 그리고 2015년 연방법원의 동성혼 법제화 판결을 무시하고 하급 법원 판사들에게 “주 대법원의 추가 결정이 있을 때까지 동성 커플에 대한 결혼증명서 발급을 금지”하도록 행정명령을 내렸다. 그는 직권남용 등 혐의로 다시 기소됐고, 자동 정직됐다.

동성애를 불법화해야 하며 무슬림이 의회 의원이 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극우 기독교인인 그는 2017년 공화당 주 상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상습 성폭력 의혹이 불거지면서 낙마했다. 고소인 9명 중 3명은 각각 14세와 16세 28세 때 무어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부 연애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성폭력 혐의는 부인했고, 고소인 일부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걸었다.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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