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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와 한국 현대사의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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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은 역사적인 하루다. 1945년 그날 2차대전 전범국 일본이 항복했고, 참혹했던 전쟁이 종지부를 찍은 날이다. 일본 천황은 NHK 라디오 전국방송을 통해 육성으로 항복을 고했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고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아 만세를 위하여 태평을 고하고자 한다.” 천황은 하루 전인 8월 14일 연합군 측에 먼저 항복의사를 전했고 방송사 기술팀을 궁으로 불러 약 4분 30초 분량의 저 연설을 녹음했다.
인류 역사는 하지만 8월 14일보다, 또 일제가 항복문서에 공식 서명한 9월 2일보다, 유사 이래 인류의 기쁜 함성이 가장 크게 울렸을 저 날을 종전 기념일로 친다. 한국을 비롯한 일제 식민지 국가의 8월 15일은 해방-광복의 날이고, 대다수 연합국 참전국들의 ‘대일전승기념일’이다. 인류는 오늘 다양한 의식과 행사로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평화의 가치를 환기한다.
8월 15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 부인 육영수가 1974년 광복절 기념행사장에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소속 문세광의 총에 숨진 날이기도 하다.
옥천공립여자전수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육영수는 1950년 육군 소령 박정희와 결혼, 1남 2녀를 두었고 5·16 군사쿠데타와 집권-장기집권의 들머리까지 박정희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육영수를 중심에 둔 평전은 드물지만, 알려진 바 그는 대통령 부인으로서의 공적 역할에 충실하고자 다방면의 전문가들에게 교육을 청해 받았고 육영사업과 빈민 구제 등 사회봉사에도 헌신했다. 박정희의 난잡한 사생활과 잦은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여러 차례 직언을 서슴지 않아 권력 하수인들로부터 ‘청와대 내 제1야당’이라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가 스러짐으로써 한국 현대사는 박정희와 유신권력에 대한 값진 증인 한 명을 잃었고, 한반도는 평화-화합의 길에서 오히려 멀어지며 비이성적 반공-대치의 길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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