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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에 대응하는 우리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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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1912년 북대서양에서 빙산과 충돌해 침몰한 타이태닉호의 비극은 자연 재난이라기보다 인재로 분류된다. 당시 타이태닉호와 관련된 여러 인물들의 대응에 수많은 오류가 있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선 뱃머리에 있던 사람들의 잘못이 있었다. 선장은 빙산이 바다에 깔려 있다는 보고를 받고도 배의 속도를 줄이지 않았고, 무선 전신기사는 빙산에 대한 경고 메시지보다 부자 승객들의 개인 전보를 전송하는 데 더 신경을 썼다. 전방을 살피는 선원은 쌍안경을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 불과 500야드 앞으로 다가온 빙산을 육안으로 발견했다. 쌍안경을 사용해 1,000야드 앞에서 빙산을 발견했다면, 급박한 상황에서 시간을 좀 더 벌 수 있었다. 상황을 인지한 1등 항해사는 “전력을 다해 배를 우현으로 돌리라”고 지시했는데, 배의 측면이 빙산에 부딪히면서 피해가 커졌다. 차라리 정면으로 빙산을 받아버렸다면 충격이 덜했을 거란 분석이 나왔다.
배의 뒷전에 있던 이들의 잘못도 컸다. 이들은 배의 설계 책임자, 선주, 선박회사 경영자들이다. 타이태닉호는 당시로선 획기적인 방수대책을 적용해 ‘침몰이 불가능한 배’로 여겨졌으나 설계상 배가 기울었을 경우 물이 넘쳐 들어올 위험이 있다는 걸 간과했다. 타이태닉호의 선주는 1등석 승객이 산책할 수 있는 갑판이 좁아진다는 이유로 구명보트 숫자를 늘리는 것을 거부했다.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그의 저서 ‘둠 재앙의 정치학’에서 타이태닉호 참사를 언급하며 ‘뱃머리에 있던 사람들’(능동적 오류)과 ‘배의 뒷전에 있는 사람들’(잠재적 오류)의 잘못이 결합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재난은 복잡하고 다양한 이유들이 서로 얽혀 발생하기 때문에 누구의 잘못이 가장 큰지, 재난 발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게 누군지 콕 집어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퍼거슨은 “재난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의 영역에 있고, 천재와 인재, 자연적 재난과 인공적 재난 식의 이분법은 성립할 수 없다”고 했다.
최근 우리는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 반복된 재난을 겪었다. 철근 누락 아파트 등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도 속속 드러났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만 해도 폭우로 인한 강의 범람, 허술한 임시 제방 관리, 차량 통제 등 행정당국의 부실 대응, 정부 기관 간의 소통 엇박자 등 안전에 대한 구멍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문제를 바로잡으려면 꼼꼼하고 정밀한 대책이 필요한데, 정치권의 진단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단순 명쾌하다. “이전 정부의 책임” 아니면 “현 정부의 책임”이다.
재난의 원인 규명에 어정쩡한 정치적 타협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재난을 도식화된 정치 싸움의 프레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이다. ‘무엇이 잘못이었나’를 따져야 할 논의가 진영 논리에 따라 ‘누구(우리 편이냐 상대 편이냐)의 잘못이냐’로 변질되면 과학적·객관적인 원인 분석을 통한 실체적 진실 파악은 불가능해진다. 잘못은 고쳐지지 않고, 처벌받아야 하는 누군가는 책임을 면하게 된다. 그리고 재난은 반복된다.
미국의 재난 대응 전문가인 줄리엣 카이엠 하버드 케네디스쿨 교수는 책 ‘악마는 잠들지 않는다’에서 “재난은 정상에서 벗어난 일탈과 같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 영원히 반복해 일어나는 일상적 표준이 됐다”고 했다. 실제 우리도 기후 위기의 영향으로 ‘관측 사상 최고값’을 경신하는 폭염과 폭우를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재난은 그것이 벌어지는 국가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모든 일을 ‘네 탓 공방’으로 엮는 우리 정치권의 민낯을 보면, 매년 악마처럼 진화하는 재난에 우리는 속수무책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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