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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가 보증하면 석방?... 있으나 마나 한 '신원보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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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에서 최고급 외제차로 길 가던 여성을 크게 다치게 한 20대 남성 사건이 연일 대중의 공분을 사고 있다. 피해자를 구조하기는커녕 경찰이 올 때까지 태연히 전화만 했다는 목격담에, 체내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됐는데도 풀려났기 때문이다. 불똥은 경찰로 튀었다. 경찰은 “변호사 신원보증을 받아 석방했다”고 해명했다. ‘신원보증’ 제도가 뭐길래 피의자는 사고를 내고도 당당히 경찰서 밖을 나설 수 있었을까.
서울 강남경찰서는 9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치상과 도로교통법상 약물운전 등 혐의로 신모(28)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신씨는 2일 오후 8시쯤 강남구 압구정역 인근 인도로 롤스로이스 차량을 몰아 20대 여성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를 받는다. 사고 여파로 피해 여성은 양쪽 다리가 골절되고 머리와 배를 크게 다쳤다.
가해 사실이 명백한 데다, 심지어 신씨는 경찰의 마약 간이 시약검사에서 전신마취제 케타민 양성반응까지 나왔다. 하지만 경찰은 치료 목적 투약이 인정된다며 그를 체포 약 17시간 만에 풀어줬고, 일주일 만에 신병 확보에 나섰다. 대중이 보기에 이해할 수 없는 수사가 이어지면서 “가해자의 뒷배가 경찰에 압력을 넣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얘기도 돌았다.
이처럼 신원보증은 석방을 담보할 만큼 힘 있는 제도처럼 보인다. 실상은 다르다. 신원보증은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다. 대검찰청 예규에 따르면, 신원보증서는 피의자 석방의 필수 요건이 아니다. 피의자와 일정한 관계에 있는 보증인이 수사기관에 피의자의 신분, 직업, 주거 등을 보증하고 향후 수사기관의 출석 요구에 협조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하는 정도다.
그렇다면 경찰은 왜 신원보증서를 받았을까. 서울 일선서 형사과 관계자는 “구속까지는 어려운데, 그렇다고 그냥 보내주기엔 애매할 때 관행적으로 받는 것이 신원보증”이라며 “범죄 혐의가 있는 피의자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려는 목적이 크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이 처음 신씨를 입건한 교통사고처벌특례법 위반 혐의는 최고 법정형이 5년 이하 금고라 통상 구속을 필요로 하는 사유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체내에서 케타민 양성반응이 나왔으나, 이 역시 간이검사라 현행범 체포 후 48시간 안에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경찰 입장에선 일단 석방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러나 형식주의의 잔재인 신원보증이 초래한 부작용은 수없이 많았다. 피의자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등을 거짓으로 적었다가 범인 도피 혐의로 기소됐는데도, 보증인은 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법적 효력이 없기에 문제가 생겨도 보증인이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은 것이다. 2020년에는 피해자들을 흉기로 위협하다 경찰에 체포된 뒤 신원보증을 받고 풀려난 60대 남성이 2명을 살해한 일까지 있었다.
결과적으로 피의자는 석방을 위해 거치는 ‘단순 절차’로, 경찰은 수사형식주의의 ‘폐단’으로 신원보증제가 남아 있는 셈이다. 때문에 형사 절차에서 전혀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 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진작부터 있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신원보증은 이미 사라졌어야 할 제도”라며 “수사기관은 구속사유가 될지 불확실하더라도 우선 영장을 신청ㆍ청구해 법원 결정을 기다리는, 피해자 중심적 관점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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