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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 과정에서 경찰관 폭행, 법원은 '생명 위협' 때만 정당방위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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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7일 “경찰이 물리력을 행사할 때 정당방위를 적극 검토해 적용하라”고 지시했다. 최근 흉기난동 범죄가 잇따르는 만큼, 과잉진압 걱정을 하지 말고 신속하게 검거하라는 주문이었다. 하지만 진압 정도가 과해 그간 경찰관이 처벌받은 사례는 수없이 많았다.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 판결문을 분석해 보니 법원은 ‘폭력을 행사할 만큼 위급한 상황이 존재했는지’를 기준으로 삼았다.
8일 한국일보가 경찰관이 직무수행 도중 피의자를 폭행해(독직폭행 혐의) 재판에 넘겨진 30건의 판결문을 살펴본 결과, 법원은 물리력 사용의 정당성을 중심으로 유죄 여부를 가렸다.
우선 무죄 선고 사례에선 피의자가 인명을 해칠 우려가 컸다는 점에 주목했다. 대구고법은 지난해 5월 태국인 마약사범 체포 과정에서 경찰봉으로 머리 등을 가격한 혐의로 기소된 경찰관에게 지난달 1심과 같은 무죄 판결을 내렸다. “마약에 취하면 강한 폭력성을 드러내 경찰관 본인 및 주변인을 보호하기 위해 강한 물리력 사용은 불가피하다”는 이유였다.
반면 위급함의 정도가 약할 경우 처벌을 피하기 어려웠다. 법원은 특히 피의자가 먼저 시비를 걸었더라도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경찰관이 폭력을 쓰면 안 된다고 봤다. 2021년 3월 자폐 증상이 있는 중학생이 행패를 부려 체포ㆍ인솔하는 과정에서 무전기로 이마를 내리찍은 경찰관 A씨 사건이 대표적이다. A씨는 “피의자가 주먹으로 때려 반사적으로 대응한 것”이라고 항변했으나, 법원은 “피의자의 목을 계속 누르고 있다가 무전기로 폭행했다”며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후 사정으로 봤을 때 침해 행위를 방어하기 위한 정당방위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독직폭행죄의 형량은 낮았다. 유죄 판결 15건 중 ‘선고유예(유죄를 인정하되, 형의 선고를 내리지 않는 것)’가 14건이나 됐다. “경찰관직 박탈은 과하다” “재범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등의 사유였다. 경찰 징계 규정에는 독직폭행은 과실이 가볍더라도 고의성이 인정되면 해임이 가능하다고 나와 있다. 징역형 또는 벌금형 판결이 나올 경우 징계 근거로 활용될 수 있는 만큼 처벌 수위를 낮게 매겼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선고유예 판결을 무작정 반길 건 아니다. 어쨌든 유죄로 인정돼 손해배상 소송이 걸리면 패소할 확률이 높아진다. 배상금도 생각보다 많다. 2016년 7월 지구대 조사실에서 피의자를 넘어뜨려 후각상실 등 장애를 겪게 한 경찰관은 국가가 전액 납부하기는 했으나, 선고유예 후 민사소송을 통해 무려 4억8,000여만 원을 배상해야 했다.
이 때문에 일선 경찰관들은 독직폭행죄에 볼멘소리를 낸다. 부산경찰청 직장협의회 대표인 정학섭 경감은 “현장 체포는 매우 급박한 상황에서 이뤄져 잘못을 할 수도 있는데, 유죄까지 내리는 건 가혹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위법성을 인정하는 판결이 계속 쌓이면 현장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물론 인권 침해와 정당한 공권력 사이의 균형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경찰은 정당방위를 폭넓게 허용해 달라는 쪽이지만, 그렇게 되면 “경찰이 국민 위에 군림하게 된다”는 시민사회의 반발도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당방위가 확대되면 남용 우려가 있다”면서도 “체포 과정에서 피의자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제재하는 수단을 사용한 경우에도 체포 행위 적법성을 따지는 법리가 옳은지는 다시 논의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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