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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은 디지털 노마드의 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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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자리를 좋아한다. 일상적인 소재를 시작으로 각자의 경험을 나누며 접점을 찾고 수다와 함께 친해지는 시간이 즐겁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에 대해 말하는 순간이 오면 잠깐이지만 조심스러워지고, 숨을 고른다. "퇴사하고 구매대행을 하며 남편과 여행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순간, 마치 무대 위가 암전됐다가, 머리 위를 비추는 핀 조명이 켜진 듯한 기분이 들어서다.
집은 어떻게 하는지, 수입은 어떻게 내는지, 양가 부모님은 별다른 말씀이 없으신지 등에 답변하는 상황은 내가 원하는 공감대 형성과는 모양새가 살짝 판이하다. 흔히 보이는 방식과 다르게 사는 삶에 대한 호기심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고 질문해 주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단지 그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나도 상대에 대해 비슷한 속도로 알아가고 싶어서, 그리고 각자의 희로애락이 있는 우리의 삶을 평범한 것과 특별한 것으로 구분하고 싶지 않아서다.
간혹 모든 이야기의 끝에 "그래도 마음대로 사니까 부러워요"라고 하는 분을 만나면 씁쓸하고, 약간 외롭다. 회사에 가지 않고 매달 다른 도시로 이동하며 사는 모습이 얼마나 좋아 보이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불규칙한 수입에 대한 부담, 매번 갈 곳을 찾는 번거로움,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게 어렵지 않다고 말하는 강의 제목을 보며 드는 자괴감과 초라함까지 모두 동감받을 순 없어도 그저 모든 삶에는 자기만의 고통이 있고 그것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건 같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하는 건 이해받고 싶은 욕구를 가진 사람의 자연스러운 감정일 것이다.
이런 외로운 심정을 오랜 지기에게 선뜻 털어놓기 힘든 이유는 나도 그들에게 동조할 수 있는 깊이가 예전과 같지 못함을 알기 때문이다. 퇴근 후 모여 그날의 '스트레스 유발자'를 안주 삼아 한풀이하는 시간을 가졌던 시기가 있었다면 이제는 만날 수 있는 시간도 적을뿐더러 내 일터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은 주로 나라서 화살의 방향이 어긋난다. 물론 회사 다닐 때를 떠올리며 들어주고 호응하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더 이상 그 행위를 통해 해소되는 것이 없고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흔히 하는 표현처럼 기가 빨려 나가는 것 같다. 아마 상대도 그걸 느꼈을 것이다.
불안에 대한 기준도 서로 달라졌다. 회사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은 '현재를 유지하는 일'에 지장이 있는 상황을 두려워한다면 나는 '변화 없는 현재'에 초조해진다. 여기저기 씨앗을 심는 마음으로 하는 일 외에도 수시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내 모습이 치열해 보이긴 할까.
오늘도 같은 시간에 출근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고단함을 견디는 삶에 존재하는 그림자처럼 디지털 노마드의 삶에도 앞면이 너무 밝아 선뜻 보이지 않는 뒷면이 있다. 팔자 좋게 여행만 하며 살자고 떠난 것이 아니라 방향성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 나선 것일 뿐이다. 20여 개국을 다녀 본 바, 돈만 있으면 한국이 가장 살기 편한 나라라는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특히 온라인으로 일하는 최적의 환경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매번 낯선 곳으로 나를 이끄는 시도 속에는 자유만큼이나 확실한 디지털 노마드의 특성인 자신의 발견과 성장 욕구가 있는 것이다. 비록 그 결정이 자신을 좀 더 외롭게 만들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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