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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건 참아도 잠재적 가해자란 시선만은"... 유치원 교사들의 고군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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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의 삶은 그저 '존버'만이 답일까요? 애환을 털어놓을 곳도, 뾰족한 해결책도 없는 막막함을 <한국일보>가 함께 위로해 드립니다. '그래도 출근'은 어쩌면 나와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노동자에게 건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담습니다.
"선생님, 화장실 가고 싶어요.
선생님, 간식 언제 먹어요?
선생님, 제가 그린 그림 봐봐요."
수도권의 한 사립유치원에서 근무하는 3년 차 교사 김수정(가명·26)씨. 만 4세반을 맡은 그가 하루에 듣는 '선생님' 소리는 수백 번이다. 그는 새벽 댓바람부터 일어나 유치원에 도착한 다음, 버스에 올라 아이들 등원을 도와야 한다. 전쟁 같은 일과 시간이 끝난 뒤 아이들이 하원한다고 해서, 유치원 교사들이 자유를 누린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날 교육일지와 다음 날 교육 계획안을 작성하고 쌓인 서류도 작성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힘든 건 육체적 고됨이 아니다. 항상 누군가로부터 감시당하고 있다는 불안감이다. 사고 예방을 위해 폐쇄회로(CC)TV가 설치된 건 받아들일 수 있지만, 교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거대한 유리창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이 유치원은 교실 옆에 참관실을 두고, 학부모가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유치원에 방문해 학습이나 놀이 장면을 지켜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간혹 학부모로부터 "왜 우리 아이는 많이 안 봐주시나"거나 "신경 좀 더 써달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가슴이 철렁한다. 김씨는 "교육과 양육의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면서 "매일 저녁 퇴근해서 울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고 토로했다.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과 특수교사 직위해제 사건이 이어지면서 교권침해 논란이 뜨겁다. 그러나 불만을 토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이들이 바로 유치원 교사다. 최근 몇 년 새 불미스러운 사건이 잇따르면서 '잠재적 아동학대자'란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유치원 교사들은 불만과 고통을 속으로 삭이고 있다. 선생님과 엄마의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하는 일의 특성상 업무와 스트레스는 과중한데, 사회적 시선이나 처우는 처참하다는 것이 유치원 교사들이 입 모아 하는 이야기다.
지난해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유치원·어린이집 교사 823명과 학부모 41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교사의 73.9%, 학부모의 99.5%가 "유치원 폐쇄회로(CC)TV 설치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부모뿐 아니라 교사들 역시나 유치원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아동학대 위험을 CCTV를 통해 예방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한국일보가 만난 유치원 교사들은 오히려 CCTV를 적극적으로 설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6년 차 유치원 교사 A씨는 "CCTV가 있어 오히려 마음이 편한 부분도 있다"며 "한번은 아이가 다리에 멍이 들어 귀가했는데, 학부모가 처음엔 다른 아이와 다툼 등을 의심하다가 CCTV를 확인하고 나서야 오해가 풀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전국국공립유치원교사노조(유치원교사노조)의 설문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전국 유치원·어린이집 교사 1,084명 중 18.6%(202명)가 아동학대를 의심받아 학부모로부터의 폭언, 욕설, 뺨을 맞거나 무릎을 꿇리는 등의 폭행, 부모 직업을 이용한 협박 등 피해를 받았다. 이 중 14.8%(30명)가 아동학대 의심을 받을 때 CCTV가 무혐의 증명에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가장 참기 힘든 건 유치원 교사를 '잠재적 아동학대자'라고 보는 시선이다. 업무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 교육자로서의 존중은커녕 의심만 늘었다는 것이다. A씨는 "사명감을 가지고 선생님이 됐는데, 초중고 교사와 달리 유치원 교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굉장히 부정적"이라며 "동료들끼리도 만나면 신세 한탄만 하고, 처음엔 훌륭한 선생님이 되고자 했던 친구들도 지금은 '할 것만 하고 퇴근하자'는 주의가 강해졌다"고 전했다.
7년 차 유치원 교사 B(32)씨는 항상 아이들 사진을 찍는 게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예쁘게 찍은 사진을 학부모가 볼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업로드하는 것도 업무의 하나"라며 "어느 아이를 편애한다는 말이 안 나오도록 모두가 최소 한 번씩 잘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어렵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유치원 교사의 업무는 초·중·고등학교 교사와는 다른 의미에서 과중하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2021년 전국 유치원 교원 4,68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절반 이상(53%)이 유아 수 20명 이상 학급을 맡고 있다고 답했다. 각 시·도교육청이 제시하는 유치원 학급당 정원 평균 16명(만 3세 기준)을 넘어선다.
서울의 한 병설유치원 교사 C(31)씨는 "한 반에 아이가 많을수록 야외 체험학습에서 통제하기가 어렵다"면서 "어린아이들은 집중력이 오래가지 않고, 활동성이 강해 보조교사가 있어도 (아동이) 20명을 넘으면 두 명의 교사가 통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게다가 유치원에 다니는 연령(만 3~5세)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관계의 기초를 형성하는 중요한 시기다. 유치원 교사는 하루하루 교육계획에 따라 신체 활동부터 언어 표현 등을 교육하는 선생님이지만 동시에 '엄마' 역할을 해야 한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아이부터, 밥을 먹기 싫다는 아이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한 유치원 교사는 "한 아이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면서 배변할 때까지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려달라고 한 적이 있다"며 "당연히 기다리는 건 전혀 문제가 아니지만, 그사이에 다른 10명이 넘는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이들이 어지럽힌 교실 정리도 교사의 업무다. 서류 작성 등 행정 업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예산에 따라 재료를 구매해 아이들의 교구(놀이·학습용 도구)를 직접 만드는 경우도 태반이다.
하지만 유치원 교사들의 교권을 지킬 방법은 지금으로선 전무하다. 교원단체에서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교육활동을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아동학대처벌법은 학교 종사자가 아동학대범죄를 알게 된 경우나 의심이 있는 경우 지자체나 수사기관에 신고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학부모 민원이 들어온 즉시 아동학대 형사사건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노조 조사에서 아동학대 의심 피해를 받은 교사 중 단 4%인 9명만이 상급기관으로부터 법률 및 의료지원을 받았다고 답했다. 대다수 피해 교사는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한 것이다.
박은혜 이화여자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는 "유치원 교사는 직업 분류상 전문직에 속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초중고 교사들에 비해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와 의무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다"고 말했다. 이어 "종일반이 늘어나는 등 돌봄 영역이 확대되면서 가정에서 이뤄지는 양육 역할이 유치원 교사에게로 넘어오고 있다"며 "근무량은 많은 반면 복지 수준은 매우 낮은 구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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