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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 침해도 생기부에 적는다는데… 교사들도 의견 분분한 이유

입력
2023.07.27 04:3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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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학폭 기준 준용 전학·퇴학시 기재 추진
"진학 불이익 지렛대로 교권침해 예방 효과"
"소송만 늘 것" 반론… 실효성·형평성 논란도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6일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열린 교권 확립을 위한 교육부-현장교원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6일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열린 교권 확립을 위한 교육부-현장교원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을 계기로 교권 확립 요구가 높은 가운데, 정부가 교권 침해 학생에 대한 징계 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에 기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상급학교 진학에 불이익이 되는 만큼 교권 침해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 거라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정부가 함께 내놓은 다른 방안들과 달리 이 대책은 교단에서조차 이견이 적지 않다. 생기부 기재를 막으려 학부모가 교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일 수 있다거나, 예방 효과는 없이 교사 부담만 가중될 거란 우려가 대표적이다.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보완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부 교육청 "신중 검토"… 교원단체 간에도 이견

2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교육부는 학생이 교권 침해로 전학, 퇴학 등 중대한 조치(징계)를 받을 경우 생기부에 기재하는 안을 추진 중이다. 교원지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기재 근거가 마련되면 시행령에 구체적 방식을 담을 방침이다. 기록 보존기간은 학교폭력에 준해서 정해질 가능성이 높다. 교육부 관계자는 "(법안 통과 전이라)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지는 않지만 학폭 사례를 주로 참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3월 중대한 학교폭력 조치사항의 생기부 기재를 강화해 퇴학은 영구보존, 전학은 4년간 보존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이날 국민의힘과 당정협의회를 열고 교원지위법 신속 개정에 뜻을 모았다.

정부와 찬성 측은 생기부 기재가 교권 침해에 대한 경고와 예방 효과가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조성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대변인은 "학생 간 폭력은 생기부에 기재하면서 학생의 교사 폭행은 기재가 안 된다는 점에 현장 교사들의 자괴감이 크다"며 "학생이 반성하고 행동을 교정하면 기록을 삭제하는 제도를 병행하면 교권 침해 예방과 교육 효과를 같이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생기부가 학생 인성 파악의 기초자료라는 점에서 교권 침해 행위는 필수 기재 사항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반대 측은 교사가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을 키울 거라고 우려한다. 학교폭력 생기부 기재 이후 학부모와 교사 간 법적 분쟁이 늘어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는 것. 교육부 통계를 보면 관련 행정소송은 2020년 116건에서 2021년 236건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1학기에만 299건에 달했다. 이장원 교사노동조합연맹 대변인은 "교권 침해 기재가 일부 학생에게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기재를 피하기 위해 소송이 남발되면서 교사 부담이 가중될 우려가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 세종·전남·인천교육청도 교원지위법 개정안에 대해 국회에 '신중 검토' 의견을 전달했다.

"예산·인력 뒷받침 없는 대책은 공허"

이주호(왼쪽)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이태규 국민의힘 정책위부의장이 26일 국회에서 열린 교권 보호 및 회복방안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주호(왼쪽)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이태규 국민의힘 정책위부의장이 26일 국회에서 열린 교권 보호 및 회복방안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1

제도의 실효성과 형평성도 논란거리다. 심창보 서울시남부교육지원청 학폭 담당 변호사는 "생기부가 상급학교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서 (대입이 걸린) 고등학생, 더 넓게 봐도 특목고에 가려는 중학생 정도를 빼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심 변호사는 "소년보호처분은 가장 무거운 조치인 소년원 송치를 포함해 어떤 기록도 남지 않는다"며 "소년법 대전제가 소년의 장래 신상에 처분이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학교폭력이나 교권 침해에 따른 징계 조치를 생기부에 남기는 것은 소년법 취지와 상충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처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교권 침해 문제를 풀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덕난 국회 입법조사연구관은 "다른 보완 대책과 함께 생기부 기재가 도입된다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교사가 정당한 교육활동을 했는데도 송사에 휘말릴 경우 당국이 소송을 지원하는 방안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교권 보호를 위해 어떤 정책을 내놓든 예산과 인력이 따르지 않으면 무의미할 텐데 정부가 이에 대해 언급이 없다"고 지적했다.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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