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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잡으면 학대 신고 겁나고, 놔두면 다른 학생 다칠까 두려운 딜레마"

입력
2023.07.27 04:3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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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초등생 무차별 폭행 피해 교사 인터뷰]
문제 행동 제지·훈육이 아동학대로 신고되는 현실
선량한 학생들 피해... 교실서 즉각 분리 가능해야

무차별 폭행 피해 교사의 상해진단서. 피해 교사 측 제공

무차별 폭행 피해 교사의 상해진단서. 피해 교사 측 제공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를 붙잡자니 아동학대 신고가 겁나고, 그냥 두자니 다른 아이들이 다칠까봐 두렵습니다. 딜레마에 빠져 있어요."

부산 북부 초등학교에서 학생에게 폭행을 당한 교사 A씨는 26일 본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학생 지도에 설 자리를 잃은 교사의 처지를 한탄했다.

8년차 교사로 올해 3학년 담임을 맡은 A씨는 담임반 학생 B군에게 두 차례 폭행을 당했다. 3월에는 B군이 A씨 얼굴 쪽으로 돌을 던지자 다른 학생들을 보호하려 B군을 뒤에서 잡았다가 턱과 가슴을 맞았다. 지난달에는 B군에게 발로 배를 걷어차이는 등 무차별 폭행을 당해 전치 3주의 상해 진단을 받았다. 이 또한 흥분한 B군을 진정시키려 뒤에서 안았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A씨는 교원 피해 구제 기구인 학교교권보호위원회 심의 신청도 포기하고 사건을 조용히 넘기려 했다. 교사의 교육활동을 정서 학대 등으로 치부하는 학부모 신고가 빈번한 터라, B군을 제지하는 과정에 있었던 신체 접촉이 아동학대 신고의 빌미가 될까봐 우려했기 때문이다. A씨는 "주변에선 '다른 아이들이 맞더라도 (문제 학생을) 붙잡지 말아야 (신고로부터) 안전하다'고 조언한다"며 "교사가 이 지경이 됐다"고 탄식했다. 신고를 의식하느라 자기 검열이 심해져 아이들 앞에서 교육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 가장 괴롭다고도 했다.

현재 병가 중인 A씨는 교사직에 회의가 들어 휴직을 고민하다가 최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2년차 교사가 숨진 일에 선배 교사로서 책임감을 느껴 교권 회복 공론화에 동참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A씨는 교실 안전을 위해 문제 학생을 제지하다가 생기는 신체적 접촉이나 훈육은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 대상에서 제외되도록 법을 개정해달라고 호소했다. 현행 아동학대처벌특례법상 누구나 아동학대 의심이 들면 신고할 수 있고 특히 학교장은 신고 의무가 있다. 일부 학부모가 불순한 의도로 아동학대로 문제 삼더라도 자동적으로 신고가 이뤄져 해당 교사가 관할 지방자치단체 조사, 경찰·검찰 조사 등 최소 수개월간 고초를 겪을 수 있는 구조다. A씨는 "아동학대 신고에 교사 개인이 아닌 교육청이 즉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교사 혼자서는 법률적 대응이 버겁고 교육활동에도 지장을 줘서 결국 학생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A씨는 학생이 문제 행동을 하면 즉각 교사 및 다른 학생들과 분리할 수 있는 제도도 절실하다고 했다. 지금은 교사가 보호자 동의 없이 문제 학생을 교실 밖으로 내보냈다가는 학습권 침해로 문책당할 수 있어 교실에서 혼자 수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A씨는 "내가 입은 상처보다 더 큰 걱정은 아이들이 늘 (문제 학생의) 폭력에 노출돼 있고 두려움에 떤다는 점"이라며 "선량한 아이들의 피해가 있다는 점을 꼭 알아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A씨가 밝힌 교권 침해 현실과 제도적 개선 요구는 교사 사회에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된 바다. 이날 국민의힘과 정부는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교원 보호 △교권 침해 시 가해 학생 즉각 분리 및 긴급 상황 시 우선 조치 등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손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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