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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굶어 죽을 판인데 무슨 어음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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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5월, 대공황 궁핍에 허덕이던 1차대전 참전 베테랑 400여 명이 오클랜드 포틀랜드에 모였다. 그들은 월터 워터스(Walter W. Waters, 1898~1959) 지휘하에 수도 워싱턴D.C.를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그들이 원한 건 전쟁 직후 연방정부가 발급한 ‘참전 보너스 증서’의 즉각 현금화였다. 증서는 1945년 만기 후 지급되는 거였지만, 베테랑(가족)들은 실업과 불황으로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한 처지였다. 지역 철도 당국이 제공한 화물열차에 나눠 타고 아이오와까지 이동한 그들은 소규모로 조를 짜 수도로 행진했고, 전국 각지의 베테랑들이 그 대열에 속속 동참했다. 워싱턴 곳곳에 판자촌 형식의 캠프를 설치해 장기 농성에 돌입한 그들 ‘보너스 군대’는 베테랑 1만7,000여 명과 가족 등 최대 4만3,000명에 달했다.
전쟁 보너스 제도는 1776년 독립전쟁 당시 도입됐다. 참전한 탓에 벌지 못한 노동 기대소득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취지였다. 뉴햄프셔 주지사를 지낸 존 바틀릿은 사유지를 캠프 사이트로 제공했고, 군인 출신인 당시 수도 경찰청장도 농성자들에게 음식이라도 제공하자며 의회에 예산을 요청했다가 거부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 상원은 6월 17일 하원이 통과시킨 보너스 조기 지급 법안을 부결시켰고 허버트 후버 당시 대통령 역시 법이 통과되더라도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공개 천명했다.
후버 행정부는 7월 28일 경찰과 탱크를 앞세운 군대까지 동원해 그들을 강제해산했다. 작전 지휘관은 훗날 한국전쟁의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와 2차대전 명장 조지 패튼이었다. 패튼은 1차대전 전장에서 부상당한 자신의 목숨을 구해 무공십자훈장을 받은, 농성대의 옛 부하를 냉담하게 외면한 일화로 손가락질을 받았다.
미 의회는 4년 뒤인 1936년 보너스 조기지급 법안을 의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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