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공교육의 장례식장"… 서이초 앞에서 교사들은 무너졌다

입력
2023.07.21 19:3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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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사망 나흘째에도 이어지는 애도
"교권 보호 위한 시스템 마련해야" 성토
경찰, 동료교사 60명 불러 사망원인 조사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한쪽 벽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등학교 담임교사를 추모하는 메시지로 가득 차 있다. 최주연 기자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한쪽 벽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등학교 담임교사를 추모하는 메시지로 가득 차 있다. 최주연 기자


"임용될 때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겠다'고 선서해요. 그런데 현실은 교사들이 아동학대범 취급을 받고 있어요."

21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앞.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무더운 날씨에 발끝까지 내려오는 검은 원피스를 입은 17년 차 초등학교 교사는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으며 이렇게 말했다. 후배의 죽음이 눈에 밟혀 30분 거리를 달려왔다는 그는 "학부모의 갑질 민원에 시달려도 교사의 무능력 탓으로 돌리는 게 지금의 교육 현장"이라면서 "저희는 동아줄 하나 없이 위태로운 처지"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근무하던 1학년 담임교사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지 사흘째에도 서이초를 찾는 동료 교사들의 발길은 이른 아침부터 이어졌다. 교내 임시 분향소에서 이날도 추모객을 받기로 결정되면서, 문 앞을 서성이던 교사들은 오전 10시 무렵부터 교정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전국초등교사노조가 준비한 국화 300송이는 2시간이 채 되지 않아 절반이 헌화됐다.

서이초에 모인 교사들 사이에선, 교사 개인이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현실에 대한 성토가 터져 나왔다. 10년 차 초등교사 A씨는 "연락처를 공개하지 않아도 차에 붙은 휴대폰 번호를 보고 연락해오기 일쑤"라면서 한숨 쉬었다. 20년 차 베테랑 교사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성토했다.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한쪽 벽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등학교 담임교사를 추모하는 메시지로 가득 차 있다. 최주연 기자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한쪽 벽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등학교 담임교사를 추모하는 메시지로 가득 차 있다. 최주연 기자


교권 침해에 아무 대처를 하지 않는 정부와 교육당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거셌다. A씨는 "학교폭력 매뉴얼 자체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음에도, 판단은 온전히 교사의 몫이고 학교는 문제가 생기면 꼬리 자르기를 한다"면서 "사비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선생님들이 태반"이라고 토로했다. 경기 수원시에서 온 13년 차 중등교사 김모(37)씨는 "병가를 내고 싶어도 다른 선생님들에게 피해가 될까 참는 상황에서 학교 도움은 언감생심"이라고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교단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한 듯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이날 강남서초교육지원청 앞 분향소를 찾아 조용히 묵념 후 돌아섰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교육지원청과 서이초 분향소에 모두 들른 뒤 "전국의 선생님들이 같은 아픔을 가지고 (교육당국을) 책망하는 데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며 "제도적인 교권 보호 방침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서이초 교사 사망 경위를 수사하는 서울 서초경찰서는 해당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과정에서 실제로 학부모의 갑질성 민원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까지 관련 정황은 파악되지 않았다"면서도 "제기되는 의혹들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동료 교사 60여 명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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