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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도시' 베르가모에서 보낸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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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좋고 바람 좋은 이탈리아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출국하기 전날까지 미루고 미뤄두었던 베르가모로 향하는 길, 여행 내내 마음 한편을 누르던 마지막 숙제를 하러 가는 기분이었다.
밀라노에서 기차로 한 시간, 알프스산맥 기슭에 있는 데다 알프스 빙하호가 근처에 있어서 아주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베르가모는 참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힌다. 여행자에게는 유럽을 싸고 빠르게 연결하는 저가 항공사의 공항으로 더 유명했던 도시 이름은 팬데믹을 거치며 '죽음의 도시'라는 뜻밖의 유명세를 치르게 된다. 코로나 1차 유행 때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큰 희생을 치른 지역. 끝없이 나오는 시신들을 다 감당하질 못하고 군용차량을 동원해 줄지어 옮기는 장면은 코로나가 불러온 비극의 상징으로 전 세계 언론에 퍼져나갔다.
신문 10개 면을 부고로만 가득 채웠던 당시의 흔적은 도시 서쪽의 '기억의 숲(Bosco della memoria)'에도 남겨졌다. 추모비에 죽은 날짜별로 모아 적은 고인들의 이름은 새겨볼수록 아프다. "3월 5일 빈센조, 안나, 아그네세, 알베르타, 로살리아, …" 태어난 날은 다르지만 죽은 날은 같은 이들이 유난히 많아진 도시, 같은 날 제사를 지내는 이웃이 여럿인 동네가 된 셈이다.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구시가 '치타 알타'는 변함없이 숨 막히도록 아름다웠다. 높은 탑이 내려보고 있는 그늘 깊은 회랑, 조각으로 가득 채워 장식한 예배당들이 둘러싼 광장은 24시간 내내 서 있어도 쉼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싶을 만큼 근사했다. 돌길에 내어놓은 테이블에 여유롭게 앉아 즐기는 스프리츠 칵테일 한 잔도, 주먹만 한 부라타 치즈를 통째로 올려 구워 가위로 쓱쓱 잘라주는 조각피자도, 500년 넘은 카페에서 내주는 진득한 에스프레소도 변함없이 맛있었다. 기품 있게 골목을 걸으며 오후 한때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이미 코로나는 잊힌 단어였다.
중세 시절 흑사병에서 베르가모를 지켜달라며 성모에게 바쳤다는 광장 한편의 성당. 때마침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태운 클래식카가 빵빵 경적을 울리며 도착했다. 설렘만 가득한 딸보다는 딸을 태우고 온 아버지가 더 긴장이었다. 성당 계단을 오르려는 신부 발에 치렁치렁한 드레스가 연신 걸리적거리자 아버지는 얼른 무릎을 꿇고 앉아 옷부터 정리해 주었다. 세상 다 가진 표정으로 마중 나온 신랑에게 딸의 팔을 넘겨 주는 순간, 아버지 눈꺼풀에 잔뜩 힘이 들어가나 싶더니 바로 글썽. 온갖 생각들이 그의 얼굴을 스쳐갔다. 마냥 행복한 미래를 그리는 두 청년을 축복하면서도 곧 발 앞에 펼쳐질 어둠이 내심 두려워진 듯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거침없이 다시 시작된 여행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아버지의 심정과 비슷했다. 바닥에 1미터 간격으로 붙였던 거리 두기 스티커는 너덜너덜해졌고, 문마다 걸린 소독제에는 뽀얗게 먼지가 앉았다. 코로나 이후에는 뭔가 다른 삶의 방식, 보다 반성적인 여행이 생겨날 거란 전망들은 아무래도 틀린 듯하다. 베르가모에서 군용차량으로 첫 번째 시신을 이송한 날인 3월 18일을 국가추모일로 정하며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본보기가 될 것"이라던 당시 총리의 말은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 걸까. 구시가 광장 바닥에 새겨진 해시계를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우리 지구에 남은 시간은 어디쯤일까' 싶었다. 눈부시게 빛나며 짙은 그림자를 만드는 태양이 순간 아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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