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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북한은 없다 ... 한반도에 드리운 '신냉전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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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군부 깡패들은 주제넘게 놀지 말고 당장 입을 다물어야 한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입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지난 10, 11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다. 그간 북한은 외교 문서에서나 '대한민국'이라는 단어를 썼을 뿐 통상 남측을 남조선으로 지칭해 왔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가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로 규정한 이래로, 공식 입장을 발표하면서 남쪽을 대한민국이라 지칭한 건 처음이다. 이를 두고 북한이 남한과의 관계를 '같은 민족'이 아닌 '2개의 국가'로 설정하기 시작한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꾸준히 한미동맹과 북핵문제에 천착해 온 저자 정욱식(51) 평화네트워크 대표의 신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북한이 온다'는 선명한 제목만으로 책의 전체 내용뿐 아니라 오늘날 한반도가 처한 상황을 조망한다. 그간 본 적 없는 '새로운 북한'이 온 것을 네 가지 시그널을 통해 조목조목 분석한다. 한반도에 '불가역적 핵시대'가 열린 것은 그 결과다. 지난해 9월 김정은이 최고인민회의 법령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를 채택하며 이같이 선언한 것을 떠올려보자. "핵 보유국으로서의 우리 국가의 지위가 불가역적인 것이 되었다."
기폭제는 '하노이 노딜'이었다. 2019년 2차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 하노이까지 육로로 4,000㎞를 열차를 타고 달려갔으나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던 김정은은 평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저자는 "하노이 노딜이 김정은에게 '충격'이라면, 판문점 번개팅 이후 일련의 흐름은 김정은을 변심을 넘어 또 다른 결심으로 이끌었"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북한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 대한 미련을 접고 핵무력을 정치·안보·경제·외교를 아우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체'로 삼은 것." 그리고 이 같은 김정은의 심경 변화는 2018년 4월부터 다음 해 8월까지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주고받은 27통의 친서 곳곳에 드러나 있다.
오늘날 남북관계를 표현하는 가장 적확한 단어는 '단절'이다. 1971년에 시작된 남북 대화는 2018년 12월을 끝으로, 1992년에 시작된 북미 대화는 2019년 10월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그간 북한을 바라봄에 있어 진보는 '포용정책'을, 보수는 '압박정책'이라는 양대 패러다임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대북정책의 유효기간은 이제 끝났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이제 북한은 안보는 핵으로, 경제는 자력갱생으로, 외교는 중러를 중심으로 활로를 찾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머릿속에서 북한은 아사자가 속출하는 굶주린 사회다. 이러한 남한의 고정관념은 식량난뿐 아니라 코로나19 국면에서도 북한의 위기를 관계 회복의 기회로 안일하게 여기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북한의 자체 곡물 생산량 조사는 국내 통계나 국제기구가 추정한 것보다 훨씬 많으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탈북자 조사에 따르면 '북한에서 고기 섭취를 얼마나 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6.6%가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 답했으며 심지어 15.5%는 '거의 매일'이라 답했다고 한다. 저자는 강조한다. "북한의 식량난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과거의 북한'에 갇히지 않으려면 기존의 정보에만 기댈 게 아니라 다각도로 실상에 접근해야 한다."
북한을 대하는 러시아와 중국의 태도도 달라졌다. 과거 두 나라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면 대북 규탄과 제재에 동참했다. 그러나 2020년 이후부터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공인할 수는 없으나, 사실상 이를 용인하는 행보를 보인다.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가 부상하면서 한반도는 '동아시아의 화약고'가 되고 있다.
'종전선언'이라는 백일몽을 꾸며, 판문점 앞에서 남북한과 미국 정상이 함께 사진을 찍고 남한 대통령이 처음으로 평양 시민 15만 명 앞에서 연설을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고작 5년도 되지 않아 남북한 관계는 어찌하여 파탄 직전에 이른 걸까. 대체 북한은 돈이 어디서 나서 하루가 머다않고 핵실험을 하는 것이며, 왜 저리 무모한 행동을 이어가는 것일까. 평소 북한 문제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일반 시민들에게는 갑작스러울 수 있는 한반도를 둘러싼 기류 변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 충분한 실마리가 담겨 있다.
불가역적 핵시대가 도래한 한반도, 불안정한 긴장이 강화하는 대만 해협, 일본의 대규모 군비증강… '신냉전'의 그림자가 드리운 동아시아에서 게임의 법칙이 이미 바뀌었음을 정확하게 알려준다는 점에서 당국자는 물론이고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누구나 읽어봐야 하는 책이다. 심지어 힘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땅에서 딸을 키우고 있는 북한의 김정은까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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