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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댓글창을 포기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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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지난주 미국 빌보드가 싱글차트인 ‘핫 100’ 순위를 매길 때 앞으로는 아티스트 공식 홈페이지(D2C 사이트)에서의 음원 다운로드 횟수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기사를 출고했다. 기준 변경에 따라 아티스트 공식 홈페이지에서 팬들이 음원을 구매하는 비중이 큰 K팝 아티스트들이 향후 '핫 100'에 진입하는 데 고전할 것이라는 예상도 덧붙였다. 아마도 사달이 난 건 방탄소년단(BTS)의 지민이 지난 5월 국내 솔로가수로는 최초로 ‘핫 100’ 1위에 등극한 원인으로 BTS 팬덤이 공식 홈페이지에서 음원을 집중적으로 다운로드받은 행태를 꼽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사가 나간 뒤 회사로 “한국 기자들이 어쩌면 이런 기사를 쓸 수 있냐”는 전화가 빗발쳤고, 기사 댓글창에는 ‘거짓 제보를 기사화했다’, ‘양심이 있으면 기사를 내려라’, ‘악성 루머를 진실인 양 배포하면 어떻게 하느냐’ 등 비난 댓글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무엇보다 취재기자가 동요될까 걱정됐다. “댓글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사실 관계가 확인됐다”는 취재기자의 답변에 안도할 수 있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뉴스 댓글에 과도하게 정념을 투사하는 팬덤의 부정적 측면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거나 논쟁적 사안을 언론이 다뤘을 때 기사에 비난 댓글이 달리는 건 흔한 일이다. 기자 개인의 명예를 훼손할 정도의 댓글이 아니라면 비난 댓글은 기자들이 감수해야 할 ‘세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사회적 의제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 확대, 숙의 기회 제공 등 언론학자들이 제시하는 댓글창의 긍정적 기능을 부정할 생각도 없다. 너그럽게 평가하자면 대형 인터넷 포털의 댓글창 운영은 그동안 알게 모르게 저널리즘의 사회적 역할인 ‘식견 있는 시민(informed citizen)’의 형성에 기여했다고도 본다. 포털에 댓글창이 만들어진 뒤 20년 가까이 흐르는 동안 독자는 댓글을 통해 정치·사회적 사안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고 언론사는 기사에 대한 독자의 관여도를 높이는 윈-윈 결과를 얻었다는 분석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는 댓글란의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너무 커져버렸다. 전국장애인차별연대의 시위를 다루는 기사에서 볼 수 있듯, 장애인·비정규직 노동자·참사 희생자·이주노동자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권리를 주장하는 내용의 뉴스가 나오면 댓글창은 혐오와 배제의 댓글들로 살풍경하다. 확증편향과 음모론에 사로잡혀 엉뚱한 사람을 사건 가해자로 몰아가는 사태(2021년 한강 의대생 사건)도 생긴다.
순기능을 하는 댓글이 없지야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댓글창에서는 악화가 양화를 쫓아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악플 노출을 걱정했던 한 기자는 순기능을 하는 댓글을 찾는 일을 ‘포클레인으로 악플을 퍼내야 좋은 댓글 하나가 찾아지는 정도’(정지혜 ‘우리 모두 댓글 폭력의 공범이다’ 중)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동감한다.
그런 점에서 대형 인터넷 포털들이 최근 댓글창의 진입 문턱을 높이거나 ‘악플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조치는 반가운 일이다. 다음은 지난달 뉴스댓글 게시판을 없앤 뒤 24시간 뒤면 댓글이 사라지는 채팅방 방식을 도입했고, 네이버는 규정 위반으로 이용제한을 당한 댓글 작성자에게는 ‘빨간딱지’처럼 이 사실을 프로필에 드러나도록 제도를 바꾸었다. 그런데 이걸로 충분할까. 사람들에게 부정적 정서를 퍼뜨리는 댓글란을 바로잡으려면 포털과 언론,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독자들의 획기적인 노력과 자원 투입이라는 3박자가 맞아야 한다. 가능할까. 이제는 특단의 대책을 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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