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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죽을 권리'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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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건 마음대로 할 수 없었지만, 내가 원하는 때에 죽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
한 노인이 얼굴 가득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TV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는 또 다른 늙은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78세 여성 가쿠타니 미치다. 달리 돌봐줄 가족이 없는 가쿠타니는 호텔 청소부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간다.
때는 일본의 75세 이상 '후기 고령자'가 전체 인구의 20%를 돌파하게 되는 어느 미래. 영화에서는 적시하지 않지만 2년 뒤인 2025년이 그 기점이라고 한다. 노인 혐오 살인이 잇따르고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자들은 "젊은 사람도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서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노인들을 살처분했을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곳간이 바닥난 연금재정을 두고 불붙은 세대 간 갈등이 이제 더는 손쓸 수 없는 사회문제로 부상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플랜 75'라는 정책을 들고 나온다. 75세 이상 노인에게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부여한다는 게 정책의 골자였다. 그러니까 가쿠타니가 본 TV 화면은 '플랜 75'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후생성이 제작한 공익광고였다. 후생성은 '플랜 75' 전담 부서를 설치한 뒤 노년층이 많이 모이는 놀이터 등으로 직원을 파견해서 해당 노인들을 회유하고 협박해 신청서를 받아내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말이 좋아 '죽음을 선택할 권리'지, 실상은 경제적 효용 가치가 다한 노인들을 폐기 처분하려는 수작이었다.
어느 날, 가쿠타니가 일하는 호텔에서 나이 든 청소부가 업무 도중 쓰러지는 일이 발생하자 호텔 측은 석연찮은 이유를 들어 노인 노동력을 한꺼번에 해고한다. 가쿠타니는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여의치 않고, 설상가상 살던 집에서 퇴거하라는 통지서를 받는다. 일과 집을 한꺼번에 잃고 퇴로 없는 지경에 내몰린 가쿠타니. 그에게 날아든 선택지가 바로 '플랜 75' 신청이었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영화 'Plan 75'를 봤던 날, 오래전에 읽은 후카사와 시치로 소설 '나라야마부시고'를 다시 꺼냈다. 일흔 살이 되면 마을 뒤 졸참나무 산으로 들어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그 기괴한 습속을 기꺼이 받아들이기 위해 생니까지 뽑아가며 준비하는 가난하고 늙은 여자 오린의 이야기가 '우바스테야마'라는 노인 유기의 과거를 그려냈다면, '플랜 75'는 초고령화 사회의 디스토피아를 경고하기 때문이다.
병원을 들락거릴 일이 유난히 많았다. 나 자신의 문제 말고도 가족과 지인들의 병원행을 도와야 하는 일이 잦은 한 달이었다. 죽음을 떠올리는 시간도 자연히 늘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스스로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어떻게든 죽음을 선택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병원 복도에 앉아 있노라면 자꾸만 영화 'Plan 75' 속 섬뜩한 장면들이 떠오르고 잘 죽는 일이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날로 노골화하는 노인 경시 풍조를 비판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지만, 포장이 어떻게 바뀌든 영화는 곧 현실의 비즈니스가 될 거라는 예감이 든다. 그래서 다시 '잘 죽을 권리'를 고민한다. 공공 지원 시스템마저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그러니 사적 부조체계라도 서둘러 꾸려야 하는 걸까. 하루하루 살아내는 일조차 버거운 우리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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