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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세, 집주인은 다 죄인인가

입력
2023.07.05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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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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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셋값이 4억 (원) 떨어져서 심란한데 세입자가 (계약이) 한 달 남았다며 내용증명까지 보내왔어요. 수시로 보내는 장문의 문자는 어떻고요. 말도 마요."

얼마 전 동네 공인중개사무소에서 흘려들은 노부부의 하소연이다. 서울 요지의 큰 아파트는 전세 내주고 작은 아파트에 전세 들어 사는 모양이었다. 부족한 돈을 채우기 위해 부부는 원래 살던 전세를 빼고 보증금을 확 낮춘 반(半)전세로 옮기는 계약을 하고 있었다. 세입자에게 돌려줄 보증금은 얼추 맞춘 듯했다.

한숨 돌리자 노부인의 넋두리가 길어졌다. "어떻게든 마련해 줄 텐데 지연이자 운운하며 계속 괴롭혀요." 공인중개사가 거들었다. "요즘 그런 일이 많더라고요." "저쪽(세입자) 사정도 이해는 합니다만…" "집주인이 죄인이 됐다"는 거친 합의에 다다르자 남편이 말렸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 갑시다." 부부는 총총 사라졌다.

10분 남짓 대화는 요즘 전세시장의 분위기를 압축하고 있었다. 일방의 진술이라는 살을 발라내면 역(逆)전세와 전세의 월세화, 세입자의 자구책 강화 같은 뼈대가 떠올랐다. 문제에 봉착한 시장은 각 주체의 대응과 선택을 통해 현장에서 답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것이 상식이고 도리다. 기실 역전세는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위기가 불거질 때마다 시장이 들썩였지만 결국 제자리를 찾아갔다.

역전세 해법은 간단하다. 집주인이 2년 전 세입자로부터 받은 전세보증금을 '그대로' 돌려주면 된다. 기존보다 전셋값이 떨어졌다는 건 현상을 설명할 뿐 미반환의 사유가 될 수 없다. 보증금을 다른 일에 융통했다면 노부부처럼 가진 것을 줄이면 된다. 그게 집주인의 '당연한' 자세다. 요즘 제법 쓰이는 집주인 앞 '선량한'이란 꾸밈말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어떤 이유든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임대인은 먼저 자신의 책임과 의무부터 살펴야 한다. '평범한' 집주인은 대개 그 이치를 알고 따른다. 고금리 탓, 정부 탓, 세상 탓은 과연 누가 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역전세 대책을 담은 건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방증일 게다. 시장은 올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에 역전세가 집중될 것으로 우려한다. 최근 6개월 내 전셋값이 기존 전세보증금을 밑도는 위험 가구가 120만 가구 남짓으로, 전체 전세매물의 절반을 넘겼다는 통계(한국은행)도 뒷받침한다. 강남 등 집값 폭등의 수혜 지역에 역전세 물량이 몰려 있다는 점, 이미 다른 자산을 변통해 돌려준 집주인도 많다는 점 등이 여전히 걸리는 대목이지만…

정부 공언대로 이번 대책은 어디까지나 '세입자 보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시적 대출 규제 완화의 엄중함을 임대인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모자란 보증금 차액을 정부가 대출로 지원하는 만큼, 집주인의 보증금 상환 여력부터 깐깐히 심사해 지원 대상을 정확하게 가려내는 건 기본이다. 형평성 논란과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또 다른 위기의 불씨가 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핵심이다.

무엇보다 자기 자본 없이 전세 끼고 집을 사는 무자본 갭투자 등 무분별한 갭투자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이익은 본인이 챙기고 손실은 세입자와 사회에 떠넘기는 행태에 마땅한 책임도 물어야 한다. 사회적 재난으로 번진 전세사기, 가계부채 최후의 보루마저 흔든 역전세 등 부동산 생태계를 교란하는 주범으로 지목된 투기성 갭투자를 언제까지 두고 볼 텐가. 갭투자의 합리적 정비가 시장 정상화의 시작이다.

고찬유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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