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의 쌀’이 된 AI 반도체

입력
2023.06.30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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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AI 반도체 중국 수출 규제 강화
'산업의 쌀'에서 패권 전략 자산으로
국가대항전 위해 우수 인력 양성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연합뉴스 자료사진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연합뉴스 자료사진

중국은 원유를 수입하는 것보다 반도체를 수입하는 데 더 많은 돈을 쓴다. 그만큼 반도체 굴기는 지상과제다. 그러나 미국의 옥죄기는 점점 거세지고 있다. 이미 반도체 장비와 고성능 인공지능(AI)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금지한 미 상무부는 이보다 연산 속도와 성능이 떨어지는 저사양의 AI 반도체 수출까지 차단하는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하며 글로벌 주식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기업이 된 엔비디아에도 불똥이 튀었다. 챗GPT 광풍이 불면서 생성형 AI의 두뇌 역할을 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반도체 수요는 폭증했고 이런 GPU 시장에서 90%의 점유율을 자랑하는 엔비디아는 대장주로 떠올랐다. GPU 구하는 게 마약보다 어렵다는 말까지 나오며 대표적 AI 반도체 모듈인 A100은 정가의 2배인 2,600만 원, 최고급 사양인 H100은 6,000만 원에도 거래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도 영향을 받았다.

그동안 중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미국의 제재로 고성능 AI 반도체를 구할 수 없자 밀수를 하거나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저사양 제품인 엔비디아 A800이나 H800을 수입해 썼다. 그런데 저사양 AI 반도체도 숫자를 늘리면 속도와 성능을 높일 수 있다. 한 중국판 챗GPT 개발엔 A800이 1만 개 이상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마치 인해전술처럼 물량으로 제재를 무력화시키자 미국은 아예 저사양 반도체의 수출길까지 봉쇄키로 한 셈이다.

이는 앞으로 AI 경쟁에서 중국의 추격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AI는 전 세계 권력과 부를 재편하는 것은 물론 미래 무기와 전쟁 판도까지 바꿔 놓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 입장에선 자국의 기술과 반도체가 중국의 군사력을 키우는 데 사용되는 걸 방치할 수 없다.

사실 반도체의 역사는 처음부터 무기와 연관돼 있었다. 1959년 최초의 집적회로 개발사인 미 페어차일드반도체는 이를 군수용으로 납품하며 성장했다. 미국이 소련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비결도 반도체 기술로 미사일의 정확성을 높인 덕분이라는 게 크리스 밀러 미 터프츠대 교수의 분석이다.

미국이 우려하는 건 이런 AI 반도체의 대부분이 대만 TSMC에서 생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AI 반도체는 설계를 하는 곳(팹리스)과 이를 위탁 생산하는 곳(파운드리)이 달라, 엔비디아도 AI 반도체를 설계만 한 뒤 TSMC에 맡겨 제작하고 있다. ‘중국몽’을 외치면서 3연임에 돌입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대만 공격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건 미국에 안보의 문제다. 지금도 TSMC는 미국의 최신 스텔스 전투기에 사용되는 첨단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고 있다.

반도체는 ‘산업의 쌀’로 불렸다. 그러나 AI 시대를 맞아 미래 국가 경쟁력과 첨단 군사력의 핵심이 되면서 이젠 ‘전략 자산’, ‘무기의 쌀’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반도체 전쟁이 각국 정부가 뛰어든 국가대항전이 된 이유다. 결국 승패는 사람에게 달렸다. 우린 40년 전 한 기업인의 혜안과 이후 수많은 엔지니어들의 땀에 힘입어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국내 이공계 학석사 졸업생과 반도체 관련 전공자는 꾸준히 줄고 있다. 지난해 반도체학과는 합격생이 대거 의대로 옮겨가는 통에 미달된 곳도 생겼다. 지금 '킬러문항'을 없애는 것보다 중요한 건 국가적인 차원에서 반도체 우수 인력을 어떻게 키워낼지 좀 더 큰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닐까.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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