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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부처 없어질라"… '부글부글' 통일부[문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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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한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입니다. 그래서 통일부라는 특별한 정부부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분위기가 뒤숭숭합니다.
지난달 30일 장·차관급 인사 발표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통일부 장관에 '대북 강경파'인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를, 차관에는 '미국통' 외교관 문승현 주태국대사를 낙점했습니다. 또 대통령실 통일비서관은 김수경 한신대 교수가 맡게 됐죠. 이들은 모두 통일부 외부 인사입니다. 특히 장·차관이 모두 외부 출신으로 채워지는 건 통일원에서 통일부로 개칭한 1998년 이후 처음입니다. 통일부 안팎에서 '초유의 인사'라는 평가가 무성한 이유죠.
윤 대통령이 '파격적인' 인사 카드를 뽑아 든 건 통일부에 쌓인 불신 탓이 커 보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남북 간 적대적 긴장과 전쟁 위협을 없애고 한반도에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정착하겠다는 청사진)는 '가짜 평화 정책'이었다는 게 윤 대통령의 인식이죠.
이 때문에 취임 후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한 대북 정책을 펴려고 했으나 통일부가 협조적이지 않았다고 판단한 듯합니다. 북한인권보고서 영문판에 면책 조항을 넣은 일이 대표적이죠. 통일부는 최근 펴낸 영문판에 '보고서의 정확성을 보증하지 못한다'는 단서를 달아 논란이 됐습니다. 이 사건 이후 차기 장관 후보로 거론되던 전·현직 통일부 차관들은 하마평에서 제외됐죠. 통일부 전직 고위 관료는 "대통령이 취임 후 1년간 지켜본 결과 통일부 내부 인사로는 부처 체질 개선이 어렵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과 통일부 사이 '간극'에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대북관이 뚜렷이 다르다는 점이죠. 윤 대통령은 북한을 현실상 적대국이자 궁극적으로는 우리 체제 중심으로 흡수해야 할 대상으로 여깁니다. "북한은 주적", "핵개발 상황에서는 단돈 1원도 주지 말라", "통일은 (남북 중) 잘사는 쪽 (중심으로)으로 돼야 하지 않겠느냐" 등의 표현에서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반면, 통일부는 북한을 '특수관계'로 봅니다. 교류협력을 통해 결국에는 통일로 나아갈 중요한 파트너라는 것이죠.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가 대표적입니다. 합의서 서문에 '남북은 나라와 나라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명시돼 있죠.
이 같은 원칙은 이후 통일정책의 근간이 돼왔습니다. 북한이 우리에게 군사적 위협 대상임은 명백하지만, 이에 맞대응하는 건 통일부가 아닌 국방부의 몫이라고 본 겁니다.
익명을 요구한 북한 문제 전문가는 "차관에까지 외교부 인사를 앉힌 건 남북 관계를 더 이상 특수관계가 아닌 국제사회의 보편적 원칙에 따라 다루겠다는 선언처럼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통일부 내부는 속앓이하며 크게 가라앉아 있는 분위기입니다. 할말이 있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죠. 단순히 최고위직을 외부 인사들에게 내줬다는 생각 때문만은 아닙니다. 현 정부 들어 북한과의 교류협력이 줄며 부처 위상이 이미 추락했는데 향후 남북 대결전의 선봉에 서게 되면 부처의 애초 설립 취지조차 희미해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겁니다.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통일부 장관은 '통일 및 남북대화·교류·협력에 관한 정책의 수립과 통일 교육, 그 밖의 통일 사무'를 관장하도록 돼 있는데요. 현 정부가 바라는 역할은 달라 보이기 때문이죠.
통일부 일부 직원은 "이러다 부처의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합니다. 과한 우려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통일부에는 과거 쓰라린 '트라우마'가 있죠. 2008년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당초 통일부를 외교부 등에 흡수통합하는 안을 발표했습니다.
난리가 났죠. 야당도 격렬히 반발했습니다. 각계 반발이 거세지자 인원을 80명 감축(550명→470명)하는 구조조정 선에서 마무리됐죠. 앞서 현 정부 인수위에서도 군 출신 일부 인사들이 통일부 폐지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야말로 수난의 연속인 셈입니다.
어쨌든 통일부는 이제 밖에서 수혈된 장·차관을 중심으로 면모를 일신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들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의지에 맞춰 인권·자유·법치 등을 앞세운 '원칙이 있는 대북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그 효과가 기대에 부응할지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통일부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한 전직 관료는 "장·차관이 외부에서 오면 당장 조직에 대한 정보나 이해도, 장악력이 떨어진다"면서 "이럴 때 특정인물에게 의존하기 쉬운데 그러면 정책이 엉뚱한 방향으로 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북 업무에 오래 종사한 통일부 직원들은 "끝없이 대립할 듯하다가도 어느 계기에 갑자기 풀리는 게 남북관계"라는 말을 곧잘 합니다. 북한의 잇단 도발로 우리와 서로 험악하게 얼굴을 붉히는 상황이지만, 그러다가도 불현듯 대화의 기회가 찾아온다는 의미입니다.
새 장·차관이 '원칙있는 남북관계'를 추진하는 건 중요합니다. 그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이기도 합니다. 다만 동시에 유연한 사고를 갖췄으면 합니다. 그래야 급변할 수도 있는 남북관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건 비단 통일부 직원들만의 바람은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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