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들

입력
2023.06.23 17: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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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문성보다 위험한 신념과 가치 충돌
조직 존립 가치 동의 못하면 근간 위협
국정철학 공유 이상으로 잘 따져 보길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전국안보시민단체총연합 회원들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중국대사관 인근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망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추방을 촉구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전국안보시민단체총연합 회원들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중국대사관 인근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망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추방을 촉구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싱하이밍 중국대사의 논란 발언(중국 패배에 베팅하면 반드시 후회한다)을 보며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우선 싱 대사의 무례함이 괘씸했고, 손 모아 고개만 끄덕이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화가 났다. 그다음 든 생각은, 중국 본국 입장에서 그가 주한 중국대사의 자리에 적절한 인물이겠냐는 점이었다.

본국과 주재국 간 가교 역할을 하는 자리, 그게 대사다. 싱 대사는 참사관 때부터 13년을 한국에서 근무한 ‘한국통’이라지만 외교관으로서 그의 입은 늘 거칠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청나라 위안스카이에 빗댔듯) 중국 정부가 정말 중국대사의 역할을 ‘가교’가 아닌 ‘내정간섭’에 두고 있는 게 아니라면, 본국보다 더 과격한 발언을 앞세우는 그가 대사에 적합한 인물일 수 있겠는가.

그 자리에 있어선 안 되는 이들이 있다. 대표적인 부류로 어느 정부에나 있는 ‘낙하산’들을 말할 수 있겠으나, 무작정 부적격자 낙인을 찍을 생각은 없다.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하니 장점도 많을 것이다. 대선 후 일정 수준의 논공행상은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다는 것도 인정은 해야 한다.

그래도 그건 전문성을 갖췄을 때 할 수 있는 얘기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한국수자원공사에, 심지어 한국보험대리점협회장에 대선 캠프 출신 인사들이 사장으로 속속 취임한다. 막 공모를 시작한 한국전력 사장 유력 후보도 캠프 출신이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관련 전문성이라곤 찾아보기 어렵다. 말 많은 KT의 새 대표이사 자격요건에 ‘정보통신 전문성’ 항목을 제외하는 대담함까지 보인다.

이보다 더 부적절한 건 싱 대사 같은 부류, 그러니까 생각과 말이 해당 조직의 존립 목적과 충돌하는 이들이다. 전문성이 없으면 일을 잘못할 뿐이지만, 신념이 충돌하면 조직의 근간을 흔든다. 과거 인권침해 등을 조사해 진실을 밝히기 위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김광동)은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만 보상하는 것은 부정의하다”며 분열적 시각을 보인다. 사회적 대화를 이끌어가야 할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김문수)은 반노동적인 시각을 번번이 노출하며 경사노위 파행에 한몫을 한다. 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을 끌어올려야 하는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이충상)은 ‘게이(남성 동성애자)들은 기저귀를 차고 다닌다’ 같은 성소수자 혐오 인식을 인권위 결정문에까지 담으려 했다. 이런 인사들이 너무 많다.

윤석열 정부가 전 정부의 ‘알박기 인사’를 하나씩 뽑아내면서 거듭 강조하는 게 있다. 국정철학을 공유하지 않는 이들과 어떻게 손발을 맞출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니 대통령과 기관장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주장에 보수든 진보든 크게 토를 달지 못한다.

그렇다면, 조직의 존립 취지를 공유하지 않는 이들이 정책을 역주행시킬 수 있다는 지적에도 동의를 해야 한다. 분열을 키우면서 어떻게 화해를 끌어내고, 노조를 적대시하면서 어떻게 노정 대화를 촉진할 것이며, 소수자를 혐오하면서 무슨 수로 인권을 향상시키겠는가. 만약 환경부 장관에 반환경적인 인사를, 또 여성가족부 장관에 안티페미니스트를 앉힐 거라면 차라리 그 부처를 해체하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이제 1년 조금 넘게 지났다. 앞으로도 많은 인사를 해야 할 것이다. 여전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대선 공신들도 많을 것이다. 낙하산 인사를 하지 말라는 주문은 공허할 수도 있겠다. 다만, 이것만은 꼭 따져 봤으면 한다. 그의 전문성에 조금이라도 부합하는 자리인지, 무엇보다 그의 인식이 그 자리의 목적과 정면 충돌하지는 않은지.

이영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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