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넛지, 긍정심리학, 파워 포즈로 성공? 과학적 근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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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원더우먼 포즈(파워 포즈)를 취하라, 당신 인생이 바뀔 수 있다.” 허튼소리 같지만 하버드대 교수가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실제로 에이미 커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2012년 테드(TED) 강연에서 자신 있게 설파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2분간 ‘파워 포즈’를 취하게 하자 더 강해졌다고 느꼈고, 스트레스 호르몬은 줄었다. 힘이 있는 듯한 파워 포즈를 취하라.”
손쉽게 자신감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말에 대중은 열광했다. 해당 유튜브 영상은 5,800만 명 이상이 시청해 테드 조회수 전체 2위에 올랐다. 커디 교수가 쓴 책도 메가 히트를 쳤다. 몇 년 후 ‘파워 포즈’ 연구진에서 통계 기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폭로가 나왔다. 이어진 연구들에서도 파워 포즈의 효과는 드러나지 않았다.
끈기와 용기의 힘을 강조한 ‘그릿’, 좌절에서 털고 일어나는 능력인 ‘회복탄력성’, 부드러운 개입이 더 좋은 선택을 이끈다는 ‘넛지’. 이런 대중 심리학 책을 달달 외우며 자신을 바꾸기 위해 열정을 다 쏟았더라도 달라진 게 없다면 당신 탓이 아니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거나 얄팍한 행동 변화로 바꿀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과학 저널리스트 제시 싱걸이 ‘손쉬운 해결책’에서 한 주장이다.
저자가 이들 효과를 모두 부정하는 건 아니다. 일부 결과를 과대 포장하거나 다른 영역까지 무모하게 적용하려는 게 문제다. 긍정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 펜실베이니아대 교수가 이끄는 긍정심리학센터는 2010년 미 육군에서 선금 3,100만 달러를 받고 ‘포괄적 군인건강(CSF)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그는 “회복탄력성을 강화하면 군인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도 나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효과가 있다는 어떤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PTSD나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군인들이 정작 필요한 조치를 받지 못하고, 전혀 무관한 ‘긍정심리학’에 시간을 뺏긴 셈이다.
저자는 “그래 봐야 ‘반쪽짜리 진실’인 행동 교정법이 구조적 불평등, 교육격차, 긴박한 사회 현안을 해결할 리 없다”고 비판한다. 넛지 역시 마찬가지다. 뉴욕에서는 경범죄를 저질렀지만 법정에 출두하지 않아 체포 영장이 발부되는 일이 잦았다. 행동과학자들은 2014년 어렵게 쓰인 소환장을 쉽게 수정하는 ‘넛지’로 법정 불출두율을 41%에서 36%로 낮췄다. 효과를 본 걸까. 뉴욕시의회는 2016년 경범죄를 아예 ‘형사범’에서 ‘민사범’으로 분류해 별거 아닌 일로 뉴욕 시민을 처벌하는 일을 끝냈다. ‘넛지’는 저비용으로 효과를 낼 수 있다. 더 중요한 건 근본적 해결책을 고민하는 일이다.
설익은 대중 행동과학, 심리학 트렌드가 미국에서 종교처럼 번진 건 정치, 사회적 상황과 맞닿아 있다. 경제 불평등은 극도로 커지고, 정치는 고장 났으며, 사회 안전망은 무너지고 있다. 부담에 허덕이는 국민들은 제도를 바꾸기 위해 뭉쳐 싸우기보다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며 교정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이비리그 대학교수가 썼다는 자기계발 책을 읽으면 장삿속에 썼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하는 게 사실이다. 그럴 때엔 ‘손쉬운 해결책’을 펼쳐보면 좋을 것 같다. ‘쉽게 성공할 수 있는 비법 따위는 없다’는 유일한 진실을 새삼 깨닫게 해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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