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그들을 '터무니없는 사기꾼'으로 치부할 것인가

입력
2023.06.23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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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으로 진실을 만들어 온 파시스트들의 행적
신간 '파시스트 거짓말의 역사'

20세기 역사상 최악의 파시스트 지도자 중 하나로 꼽히는 아돌프 히틀러. 한국일보 자료사진

20세기 역사상 최악의 파시스트 지도자 중 하나로 꼽히는 아돌프 히틀러.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9년, 미국 텍사스 엘패소에 있는 월마트에서 파시스트로 추정되는 세력에 의해 히스패닉 계열 거주자 20명이 학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히스패닉계 이민자 자녀들은 진짜 미국인이 아니라며 자신들의 공격이 '침략자'들에 대한 선제적 행동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없는 사실에 기반한 차별적 거짓말이었다.

파시즘과 포퓰리즘에 관해 세계적 권위를 가진 미국의 역사학자 페데리코 핀첼스타인은 이 책의 집필을 마칠 때쯤 벌어진 저 사건에 주목했다. 저자는 사건을 언급하며 "이런 상황은 역사 속 파시스트의 거짓말들과 많은 유사점을 갖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솔리니와 히틀러 등 20세기 역사를 점령한 파시스트들이 어떤 작업을 거쳐 집단 이데올로기를 강화했는지 설명한다. 예컨대 유대인이 선천적으로 더럽다는 주장으로 학살을 정당화하고자 강제수용소 환경을 지저분하게 조성했던 나치의 행적을 되짚는 식이다.

파시즘으로 권위를 세운 지도자 개인을 두고 정신 이상자나 터무니없는 사기꾼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들을 '비정상'이라고 단정 짓는 이런 단순한 접근이 오히려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파시스트들의 거짓말을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정의·분석할 기회를 잃고, 결과적으로 이들 주장에 효과적으로 반대할 수도 없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트럼프, 보우소나루, 오르반과 같은 지도자들이 급부상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경고한다. "백악관에서 나온 인종차별과 여성혐오는 현실을 환상에 가까운 것으로 변형시키려는 정치적 시도"이니 "무시돼서는 안 된다"고. 허위조작 정보가 실제 뉴스보다 더 강한 파급력을 가진 '탈진실' 시대 속 우리에게 이 당부는 유독 엄중하게 들린다.

파시스트 거짓말의 역사·페데리코 핀첼스타인 지음·장현정 옮김·호밀밭 발행·236쪽·1만5,800원

파시스트 거짓말의 역사·페데리코 핀첼스타인 지음·장현정 옮김·호밀밭 발행·236쪽·1만5,800원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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