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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104조 원 투자 받았지만 아직 헝그리" 베트남의 끈질긴 '구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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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한국일보의 세 번째 베트남 특파원으로 부임한 허경주 특파원이 ‘아세안 속으로’를 통해 혼자 알고 넘어가기 아까운 동남아시아 각국 사회·생활상을 소개합니다. 거리는 가깝지만 의외로 잘 몰랐던 아세안 10개국 이야기, 격주 목요일마다 함께하세요!
“베트남 박닌성에는 삼성을 비롯한 한국 기업이 많이 들어와 있다. 한국의 박닌성 누적 투자액은 143억4,000만 달러(약 18조3,724억 원) 이상으로, 성 전체 외국인 투자액의 60%를 차지한다. 박닌성은 공항과 항만 접근성도 매우 뛰어나다. 투자하면 절대 후회 없을 것이다.”
지난달 18일 베트남 북부 박닌성에서 열린 한국과 베트남의 민관 합동 행사 ‘미트 코리아(Meet Korea) 2023’ 콘퍼런스 현장. 베트남 중앙정부와 북부 10개 핵심 지방성 지도자, 한국과 베트남 기업인 500여 명 앞에서 응오탄푸엉 박닌성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이 이렇게 말했다.
푸엉 부위원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중국 접경지역 꽝닌성 부이반캉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꽝닌성은 베트남에서 중국과 육상·해상 국경이 모두 맞닿은 유일한 지역이다. 지난해에는 베트남상공회의소 지방경쟁력지수(PCI)와 유엔개발계획(UNDP)의 지방정부 공공행정성과지수(PAPI)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제조 산업 전체와 자동차 부품, 항만 물류서비스를 유치하고 있으니 꼭 한번 방문해 주기를 바란다.”
뒤이어 발표에 나선 북부 주요 도시 관계자들도 “한국 투자자를 환영하기 위해 레드 카펫을 펼칠 준비가 돼 있다”거나 “지방정부가 앞장서 산업단지를 구성할 것”이라며 적극적인 구애를 보냈다. 콘퍼런스 참가자들은 △소득세 50% 감면 △지방정부의 확고한 지원 △행정절차 간소화 등 투자 기업이 받게 될 혜택이 적힌 프레젠테이션(PPT) 화면을 띄워가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한국은 몇 년 전부터 ‘베트남 누적 외국인직접투자(FDI) 1위’ 타이틀을 놓지 않고 있다. 1988년 이후 올해 5월까지 한국의 누적 투자액은 815억5,700만 달러(104조 5,560억 원)에 달한다. 베트남에 진출한 9,000개 이상의 한국 기업은 현지 경제와 산업 생태계를 떠받치고 있다. 삼성전자 한 곳에서만 베트남 전체 수출의 20% 이상을 담당할 정도다. 한국은 명실상부한 베트남 최대 투자국이다.
북부 주요 지방정부들이 ‘추가 투자 러브콜’에 나선 것은 최근 ‘숫자’로 나타나는 투자 전망이 장밋빛이 아니기 때문이다. 베트남 기획투자부(MPI)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한국 기업의 베트남 투자액은 6억6,650만 달러(약 8,539억1,980만 원)를 기록했다. 지난해 동기(20억6,020만 달러) 대비 67.6% 급감한 수준이다. 특히 제조·가공업 분야(-72.2%) 투자 위축이 두드러졌다.
같은 기간 일본과 중국 기업이 베트남에 각각 20억7,210만 달러(약 2조6,547억7,000만 원), 16억820만 달러(약 2조614억 원)를 투입하며 전년 같은 기간보다 투자액을 119.3%, 41.8% 늘린 것과 대조적이다.
올해 5개월만 놓고 보면 한국은 베트남에 투자하는 82개국 중 싱가포르, 일본, 중국, 대만에 이어 5위로 밀려난 상태다. 이 시기 베트남에 대한 한국의 투자 프로젝트 역시 지난해(737건)보다 11.4% 줄어든 653건으로 집계됐다.
사실상 베트남 경제 발전을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 온 한국 기업의 투자가 올해 들어 눈에 띄게 줄어들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주요 도시들이 앞다퉈 ‘세일즈’에 나선 것이다.
한국의 베트남 투자 급감 이유는 복합적이다. 기획투자부는 “올해 상반기에 계속된 글로벌 경제 위기 여파에다 내년에 베트남이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을 적용할 것이란 우려 탓”이라고 설명했다. 외부 요인이 크다는 얘기다.
△고금리로 인한 해외 투자자금 조달 어려움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의 한국 제조업 투자 유치도 이유로 꼽힌다.
산업 현장의 목소리는 조금 다르다. 베트남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교민들은 베트남 당국의 까다로운 노동 허가와 소방시설 승인 등 ‘규제’가 가장 큰 투자 걸림돌이라고 입을 모은다.
홍선 주베트남 한인상공인연합회(KOCHAM·코참) 회장은 “베트남 정부가 외국인 노동 비자(워크퍼밋) 발급 요건을 강화하면서 한국 기업들이 필요한 인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불필요하게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 있다”며 “한국 기업의 이탈을 막고 안정적으로 투자에 나서게 하려면 베트남 중앙·지방 정부의 투자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베트남에 진출한 A대기업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베트남 정부 ‘부패와의 전쟁’ 여파로 공무원들이 몸을 사리고 올해 초 대표적 지한파(知韓波)인 응우옌쑤언푹 국가주석까지 부패 이슈로 돌연 사임한 정치 리스크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베트남이 30년 넘게 호흡을 맞춰온 ‘경제 동반자’인 점을 감안하면 투자 불씨가 쉽게 수그러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종섭 코트라 동남아·대양주지역 본부장은 “올해 상반기 경제협력이 다소 주춤했지만 베트남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도 고성장을 이뤄낸 국가여서 하반기 더욱 다양한 부문의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트남은 팬데믹 기간 국내총생산(GDP)이 역성장하지 않은 몇 안 되는 국가로, 지난해 GDP 성장률은 8%를 기록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방문(이달 22~24일)이 경제협력의 새로운 도약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국빈 방문에 윤 정부 출범 이후 최대 규모인 205명의 경제사절단이 동행하는 만큼 활발한 사업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기업인들은 말한다.
베트남 언론 VN익스프레스는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는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세일즈 외교’를 해외 순방의 핵심 요소로 삼았다”고 소개했고, 일간 라오동은 윤 대통령이 주요 기업 수장들과 함께 베트남을 방문하는 점을 강조하며 “양국 경제 협력에 질적인 변화가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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