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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동상, 짓기와 허물기

입력
2023.06.2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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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1 장 물랭- 2

1964년 12월 장 물랭 판테온 이장 행사장의 샤를 드골(왼쪽 두 번째)과 앙드레 말로(맨 오른쪽). georges-pompidou.org

1964년 12월 장 물랭 판테온 이장 행사장의 샤를 드골(왼쪽 두 번째)과 앙드레 말로(맨 오른쪽). georges-pompidou.org

100가지 미덕으로 추앙받던 사람이 하나의 악덕 때문에 하루아침에 손가락질 받는 예는 드물지 않다. 거꾸로 여러 악덕으로 지탄받던 인물이 불쑥 드러난 하나의 미덕 덕에 이미지 세탁에 성공하는 예도 있다. 그런 반전은 행불의 우연으로도 이뤄지지만 ‘감춰진 진실’로 치장한 음모 혹은 의도로 촉발되기도 한다.

좌우 이념으로 사분오열해 있던 레지스탕스 조직들을 조국 해방이라는 하나의 대의로 뭉치게 했던 장 물랭의 화려한 부활은 프랑스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에 다시 불을 지피며 한소끔 뜨겁게 끓어올랐지만 얼마 안 가 그에 대한 여러 의혹과 흠집 내기가 시작됐다. 그의 사생활을 문제 삼는 이들도 있었고, 청년기의 몇몇 사례를 들어 그를 야망에 사로잡힌 출세주의자로 매도하는 이도 있었다.

영국 저널리스트 겸 전기작가 패트릭 마넘은 2020년 전시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배신과 음모라는 부제를 단 논픽션 ‘그림자 속 전쟁’에서 물랭을 소비에트의 지령으로 움직인 공산주의자였다고 주장했다. 겉으로는 드골 편에서 활동했지만 진의는 전후 프랑스를 러시아의 영향력하에 두어 권력을 쥐려 했다는 것. 그러다가 평의회 조직 전후부터 소련을 배신하고 우파로 전향했고, 그 탓에 공산주의 레지스탕스 진영의 밀고로 체포됐다는 것. 마넘은 물랭의 영웅담 중 하나로 회자되는 1940년의 자살 시도, 즉 공직자 시절 북아프리카 양민 학살 주역을 프랑스 외인부대 소행이라고 조작한 문건에 서명을 거부하는 바람에 투옥된 뒤 유리조각으로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을 시도한 일도 사실은 간수가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조심스럽게 동맥을 피해 목을 그은 ‘교활한 쇼’였다고 주장했다.

마넘은 자신의 과격한 동상 허물기에 대한 아무런 실증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고 그의 주장은 악의적 허구로 공식화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찜찜한 의혹과 음모론의 불씨를 남기는 데 성공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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