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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한국 영재, 의대로 몰릴 때... 중국 천재는 칭화대 전자과에 집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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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도체 기술이 한국을 맹추격 중입니다. 중국 반도체 수준은 어디까지 올라왔고 앞으로 얼마나 발전할까요? 미국과의 반도체 전쟁을 버텨낼 수 있을까요? 한국일보가 상세히 짚어봤습니다.
이곳의 단점이요? 경쟁이 치열해 좋은 학점을 받기 어려워 졸업이 너무 힘들다, 그거 하나 말곤 없는 것 같아요.
지난달 30일 중국 베이징 칭화대 집적회로학원(반도체 대학원)에서 만난 대학원생 저우루오롱(23)씨는 "칭화대의 부족한 점이 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저우씨는 최근 베이징이공대 전자학과를 졸업한 뒤 석사과정을 밟기 위해 칭화대 집적회로학원에 진학했다. 베이징이공대 또한 1940년 설립된 명문 국립대. 이공계에서 알아주는 학교다. 하지만 칭화대에 오니 말그대로 반도체에 반쯤 미쳐있는 '천재'들을 당하기 어렵다는 게 저우씨의 소감이다. 저우씨는 "9월에 시작되는 가을 학기에 입학 예정인데, 다른 학생들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미리 학교에 나와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반도체가 다른 산업과 다른 점은 '사람'(인적자본)에 의존하는 정도가 매우 심하다는 것이다. 다른 산업은 저렴한 노동력이나 시장·원자재 공급처와의 접근성이 중요하지만, 반도체 산업은 고급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는 곳이냐에 따라 입지가 결정되는 경우다 많다. 반도체 굴기를 미래의 대업으로 삼은 중국에서, 반도체 인재 공급의 화수분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 바로 이곳 칭화대다.
실제 중국 반도체 산업은 최고의 이공계 인재들이 모인 칭화대 졸업생들이 주름잡고 있다. 칭화대는 시진핑 국가주석(화공과 졸업)의 모교이기도 한데, 막강한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관련 인력을 대규모로 배출해 반도체 산업의 인큐베이터(造芯孵化器)로 불릴 정도다.
대표 인물들이 '칭화대 전자학과 85학번'이다. 자오웨이궈 전 칭화유니 회장을 비롯해 중국의 주요 반도체 기업 창업주 10여 명이 칭화대 전자학과 85학번이다. '전설적인 칭화대 전자학과 85학번이 중국 반도체 산업의 절반을 떠받치고 있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85학번 말고도 창업주나 최고경영자(CEO)가 즐비하다. 중국 최고의 반도체 전문가로 불리는 웨이샤오쥔 중국 반도체협회 집적회로설계분회 이사장, 중국 최대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 중신궈지(SMIC)의 공동 CEO 자오하이쥔, 반도체 핵심부품인 이미지센서 분야의 강자 갤럭시코어의 CEO 자오리신, 지난해 세계 반도체설계(팹리스) 기업 10위권에 포함된 웨이얼반도체의 창업주 위런룽 등이 모두 칭화대 전자학과 출신이다. 칭화대를 빼놓고는 중국 반도체 산업을 논할 수 없다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한국일보가 지난달 30일 찾은 칭화대 집적회로학원은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입구에선 폐쇄회로(CC)TV가 출입자를 감시 중인데, 이곳에서 만난 한 학생은 기자에게 "외부인이라면 말을 걸지 말라"며 까칠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단순 출입도 어렵지만, 진짜로 어려운 건 이곳의 학생이 되는 것이다. 칭화대 전자학과는 중국인들의 '꿈의 학교' 중에서도 가장 진학하기 어려운 학과다. 같은 대학 컴퓨터공학과와 함께 늘 중국 전체 순위 1·2위를 다투는 인기학과다. 매년 300명을 뽑는데 중국의 수학능력시험(가오카오) 응시생 1,193만 명(지난해) 중 가장 상위권 학생들이 이 학과를 노린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대 의대의 위상인데, 졸업만 하면 최고 수준 연봉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화웨이, 바이두, 텐센트 등 중국 정보통신(IT) 업계의 연봉은 다른 기업에 비할 바 없이 높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의 삼성전자' 격인 화웨이의 학부 졸업생 초봉은 약 6,000만~7,000만 원 수준이고, 석박사 과정을 수료하면 억 단위까지 올라간다. 중국의 1인당 소득이 한국의 3분의 1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 학부 졸업생이 초봉으로 2억원 정도를 받는 셈이다.
중국에서 의대 인기가 그리 높지 않다는 점도 칭화대 전자학과의 인기에 한몫을 한다. 중국은 의료 수준이 높지 않아, 의사의 급여나 업무 환경이 IT 업계에 많이 못 미치는 편이다.
칭화대 전자학과에 들어갔다고 해서 최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자학과 안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반도체 설계와 생산 등 회로 산업 전반을 다루는 세부전공 마이크로전자학과(microelectronics)에 진학할 수 있다. 칭화대 마이크로전자학과에 재학 중인 한국인 A씨는 "어렸을 때부터 취미가 회로 설계인 학생이 있을 정도로 소위 반도체 '덕후'(특정 분야에 몰두한 사람)들이 많다"면서 "현재 기숙사에서 4인 1실을 사용하고 있는데, 한 명은 산둥성 1등이고 나머지는 자기 동네에서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수재들"이라고 설명했다.
칭화대 마이크로전자학과는 2021년 4월 시진핑 주석의 모교 방문 이후 고급 연구기관으로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된다. 시 주석은 당시 "반도체 인재 양성"을 강조했고, 이후 이 학과와 나노전자과, 전자공학과가 공동으로 별도 대학원 성격의 집적회로학원을 설립했다. 칭화대 외 중국의 다른 주요 대학들에서도, 시 주석의 발언 이후 반도체학과와 관련 대학원이 우후죽순 설치됐다.
당시 중국 정부는 시 주석의 칭화대 방문 이전부터 반도체 인재 양성 전략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 주석이 칭화대를 찾기 8개월 전인 2020년 8월, 중국 국무원(행정부)은 '신시대 집적회로·소프트웨어 산업 질적 발전 촉진 정책'을 발표하고 △세무 △투자 △연구개발 △수출입 △인재 △지적재산권 △국제협력 △시장응용 등 8개 영역에서 반도체 산업발전을 장려하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정부 지원책이 발표되자 반도체 인재 양성의 최전선에 있는 대학들이 움직인 것이다.
2020년대 들어서 중국의 반도체 인재 육성 정책은 특히 석박사 이상의 전문인력을 양성하는데 주력했다. 반도체 자립을 위해선 인재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중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2021년에만 칭화대, 베이징대, 화중과기대(우한) 등 14개 대학이 반도체 대학원을 신설했다.
당연히 투자도 늘었다. 칭화대 집적회로학원은 올해 가을학기부터 기존 지상 4층 규모의 작은 건물에서 12층 규모의 신축 연구강의동으로 이사를 간다. 비좁은 공간에서 연구를 하던 학생들 입장에선 상전벽해다. 실제 새롭게 지어진 집적회로학원 건물을 찾았더니 외관 공사를 마치고 내부 공사가 한창이었다.
신설된 집적회로학원은 미국 제재로 특히 곤혹을 겪고 있는 전자설계자동화(EDA) 같은 분야의 연구도 강화할 예정이다. 반도체 설계에 필수적인 EDA 소프트웨어는 서방의 3개 회사가 공급을 독점하고 있어, 중국 반도체 산업의 아킬레스건이다. 인민일보에 따르면 칭화대 집적회로학원은 같은 학교 내 기술학원, 소프트웨어학원 등과 함께 EDA 전공을 신설, 연구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칭화대의 핵심 경쟁력은 '학교기업'과 인큐베이팅 시스템이다. 중국 정부는 1980년대 학비 충당을 위해 대학에 기업 설립을 허가했는데, 칭화대는 이후 철저한 현장 중심 교육과 응용기술 연구를 통해 돈도 벌고 인재도 키우는 중국만의 독특한 산학협력 방식을 구축했다. 대학은 자체 출자를 통해 교수나 학생 창업을 지원하고, 이를 통해 성장한 기업은 그 대가로 대학 인재를 채용하고 학내 연구 시설을 활용해 발생한 이익을 대학에 환원한다.
칭화대는 1980년 중국의 첫 대학기업인 칭화기술서비스회사를 세웠으며, 1997년 둥팡주식유한공사를 증권거래소에 처음으로 상장시켰다. 1994년에는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산학연 클러스터인 칭화 과학기술원(TUS 파크)를 설립, 학생과 교수의 창업을 돕는 인큐베이팅 시스템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본격적 사업에 나서 지주회사인 칭화홀딩스를 만들었다. 중국 반도체 굴기의 상징이었던 칭화유니그룹(2021년 파산)도 칭화홀딩스 소속이었다.
이제 칭화대 출신들은 팹리스, D램, 인공지능(AI) 등 반도체 산업 전 분야에 포진해 있다. 고영화 베이징 한국창업원장은 "중국 국민들은 원래부터 자국이 세계 1위라고 생각하는데, 중국이 말하는 '부흥'이란 건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하던 당나라 때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 중국의 자신감은 결국 사람에서 나온다"며 "칭화대 등 좋은 학교에서 좋은 인재가 나오고, 좋은 인재가 좋은 기업을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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