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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미국에 뺨 맞은 중국... TSMC·삼성 잡으려 칼 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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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도체 기술이 한국을 맹추격 중입니다. 중국 반도체 수준은 어디까지 올라왔고 앞으로 얼마나 발전할까요? 미국과의 반도체 전쟁을 버텨낼 수 있을까요? 한국일보가 상세히 짚어봤습니다.
결국 선택과 집중입니다. 중국은 2000년대 자본과 인력을 대거 액정디스플레이(LCD)와 태양광 산업으로 돌렸죠. 그리고 10년 만에 그 분야를 석권했죠. 그런 다음 2010년대 들어서 방향을 틀어 반도체에 '올인'하고 있어요.
고영화 베이징 한국창업원장
중국 반도체 산업의 시초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반도체 개발 목적은 군사용이었다. 중국은 1960년대 원자·수소폭탄, 인공위성 등을 개발하며 무기와 로켓에 탑재할 반도체 기술 개발에 공을 들였다. 1957년 중국 최초의 트랜지스터를 생산했고 8년 뒤인 1965년 집적회로(IC) 개발에도 성공했다. 강기동 박사가 한국반도체를 설립(1974년)하면서 본격적으로 반도체에 뛰어든 한국보다 17년이나 앞섰던 셈이다. 하지만 실패로 돌아간 경제성장 계획인 대약진운동(1950년대 말~60년대 초), 국가 지식 체계를 스스로 파괴해 버린 문화대혁명(1966~1976) 등을 거치며 기술 발전의 기회를 잃어버렸다.
그랬던 중국 반도체가 다시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오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5년 '중국 제조 2025'를 선포하며 10대 전략 산업의 1순위로 반도체를 지목했다. 당시 중국 정부는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대기금)를 조성하며 향후 10년간 1조 위안(약 16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8년이 지났다. 비록 메모리와 파운드리(위탁생산)에선 절대강자인 대만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격차를 좁히지 못했지만, 팹리스와 장비(SME) 등에선 이미 한국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중국 반도체 산업의 덩치는 커졌다.
이런 중국 반도체 산업의 기지개와 용틀임을 눈앞에서 목격한 이가 바로 고영화 베이징 한국창업원장이다. 그는 대우와 삼성 등 대기업 영업직을 거쳐 중국 모바일 시장의 가능성을 포착, 2000년대 초반 중국에 건너가 사업으로 성공을 거뒀다. 현재 베이징대 한반도연구소 연구원으로도 재직 중이다. 지난달 29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중관춘 한국창업원에서 본보와 만난 고 원장에게 중국 반도체 굴기의 과거·현재·미래 이야기를 상세히 들어봤다.
2000년대 '치킨게임'으로 대부분 줄도산했던 중국의 D램·낸드플래시 제조회사들이 이제 다시 국가전략의 수혜를 받아 부흥을 노리고 있습니다.
고영화 베이징 한국창업원장
중국은 명실상부 '세계의 공장'이다. 적정한 품질의 상품을, 가장 낮은 가격에, 가장 빨리, 대량생산할 수 있는 제조업 체계를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게 구축했다. 그래서 세계적 기업들은 대부분 중국을 생산기지로 삼았다. 이런 제조업 기반을 이용해 자국 제조업체들도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이 자본을 집중한 디스플레이·태양광 등 분야에선 TCL, BOE, 룽지 등 세계 점유율 1·2위를 다투는 굴지의 기업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런데 제조업 대국이 되고 나서 보니, 중국 입장에서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중국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완제품에 꼭 들어가야 하는 부품인 반도체가 전부 미국·한국·대만산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돈을 벌수록 그 과실의 상당수가 그 나라들에게 넘어가고 있었다.
"2013년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정치협상회의)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류엔둥 당시 부총리가 무역수지를 보더니 '석유보다 반도체를 더 많이 수입하고 있다'는 말을 했어요. 중국 입장에선 무시무시한 얘기죠. 그리고선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중국 사회 전반적으로 반도체 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인식이 공유됐어요." 고영화 원장은 중국이 반도체에서 각성을 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후 2010년대 중반부터 중국 정부는 반도체에 사활을 걸었다. 중국 정부가 만든 국가반도체펀드와 지방 정부의 합작 투자, 돈 벌 가능성을 본 민간의 투자까지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파운드리, 메모리 등 '제조' 분야에 투자가 집중됐다.
보통 반도체 공정은 크게 △설계 △제조 △후공정으로 나뉜다. 중국 입장에서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는 자국의 완성품 제조업체를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후공정(칩을 패키징하는 공정)은 진입장벽이 낮아 고도의 기술 없이도 성장이 가능했다. 그러나 막대한 자본, 시간, 연구 인력이 필요한 제조 분야는 그때까지만 해도 중국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이미 한참 앞서나간 한국과 대만에 주도권을 내준지 오래였다.
고 원장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대기금을 통해 총 1,387억 위안(약 26조7,000억 원)이 우선 지원돼, 이 대부분이 중신궈지(SMIC)와 화홍반도체 같은 파운드리 업체에 투입됐다"며 "푸젠진화반도체(JHICC),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등 메모리 분야의 '빅3'에도 막대한 투자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시작된 미국의 제재는 중국 입장에서는 치명적이었지만, 장비·소재 등 다른 반도체 산업 분야 성장에는 오히려 기폭제가 됐다. 수혜를 본 대표적 회사가 반도체 제조의 3대 공정(노광·식각·증착) 각 분야에서 '국가대표팀'급으로 성장한 △상하이마이크로(SMEE) △중웨이반도체(AMEC) △베이팡화창(NAURA)이다. 고 원장은 "반도체장비 기업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식시장에 상장될 정도로 정부, 민간 가릴 것 없이 자본이 투입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도체 하나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의 30~40%가 노광 공정에 사용됩니다. ASML의 첨단 장비 없이 기존 장비로만 공정을 돌리면 시간이 몇 배 늘어나죠. 중국이 7나노, 14나노 공정 개발에 성공해도 양산에 돌입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고영화 베이징 한국창업원장
하지만 중국의 고민은 여전하다. 45나노미터(nm·1nm=10억분의 1m) 이상의 공정은 국산화가 가능하다지만, 그 이하의 첨단공정에선 자체기술 개발 및 해외 기업과의 거래가 필수적이다. 미국이 첨단장비 수출을 금지한 것도 중국의 가장 아픈 곳을 노린 것이었다. 중국이 해외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인수합병(M&A), 인재 영입, 나아가 무차별적인 기술 유출을 시도하는 것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굴기'를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초미세 공정에 필수적인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고, 대만 한국과 비교해 부족한 '생산의 경험'도 중국의 발목을 잡는다. 고 원장은 "메모리는 시스템 반도체와 달리 소품종 대량생산 방식이라 수율(웨이퍼 하나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 칩 개수에 대비해 실제 생산된 정상 칩의 비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제조원가를 낮춰 매출을 올리고 성장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같은 인원이, 같은 공정으로 생산하지만 삼성전자는 한 달에 12인치 웨이퍼 12만 장을, 중국의 CXMT는 그 절반인 6만 장을 생산할 정도로 아직까지는 수율 차이가 극심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중국이 반도체 국산화율 70% 달성이라는 목적을 단기에서 중장기로 전환하면서 숨고르기에 들어간 만큼, 고 원장은 한국도 이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올해 4월 베이징시 산하 국유 반도체 기업인 옌동마이크로(YDME)가 75억 위안(1조4,000억 원)을 투자해 순수 중국산 반도체 장비와 기술만을 이용한 65나노 파운드리 공장의 시험생산에 성공한 사실을 소개했다. 고 원장은 "결국 중국은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방에 의존하지 않고 본인들 손으로 반도체를 1부터 100까지 만들겠다는 심산"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실적으로 한국이 반도체 모든 분야에서 중국을 이길 수는 없다"며 "경쟁력 있는 제조기술을 바탕으로 메모리와 파운드리 분야의 격차를 벌리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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